벽에 부딪혔을 때, 나는 문을 찾기 시작했다.
큰딸을 낳고 얼마 후, 우리 가족은 장성에서 금촌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서울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군인 가족의 삶은 그랬다. 낯선 곳으로 여기저기 이사를 다녀야 하는 것. 장성이라는 먼 곳에서 3년을 보낸 후였기에, 금촌행은 마치 서울로 돌아가는 것처럼 반가웠다.
아파트를 보러 처음 금촌에 갔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낡은 군인 아파트였다. 장성에서는 지은 지 얼마 안 된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금촌의 군인 아파트는 달랐다. 너무 작고, 너무 낡았다.
냉장고 문을 완전히 열 수도 없었고, 세탁기는 욕조 위에 올려놓아야 했다. 베란다도 없었고 방도 하나뿐이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집의 상태였다. 청소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그런 집을 보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행복한 환경에서 살았는지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머릿속은 온통 '어떡하지?'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군인 가족의 진짜 힘든 일들을 체감하게 된 것은.
일단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이사를 하기로 했다.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욕실 바닥의 묵은 얼룩. 창문을 아무리 열어놔도 빠지지 않는 퀴퀴한 냄새. 청소를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사를 다 마치고 나서야 실감했다. 결혼하고 3년 만에, 내 환경과 삶이 얼마나 고된지를.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앞집에 사시는 선배 군인 가족분이 산부인과에 갈 때마다 나에게 함께 가자고 부탁하셨다. 일산까지 차로 데려다 드리곤 했다.
어느 날,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기한 꿈을 꿨다며, 혹시 내가 또 임신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꿈속에서 큰 금구렁이와 은구렁이가 나란히 자고 있었다고 했다. 동생도 그 옆에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금구렁이만 남아있고 은구렁이는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이다. 너무 생생해서 태몽 같은데 별일 없냐고 물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부인과에 간 김에 나도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를 한참 보시더니 물으셨다.
"혹시 집안에 쌍둥이가 계세요?"
친할아버지가 쌍둥이셨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 그래서 아기 주머니가 두 개네요. 축하드려요. 쌍둥이입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큰딸 하나도 지금 너무 벅찬데, 쌍둥이라니. 마음이 무거웠다. 집에 와서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쌍둥이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남편도 놀라며 나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낳아야 했다.
친정엄마께 알렸다. 이번에는 반응이 조금 달랐다. 할 수 없지, 찾아온 생명인데 엄마가 함께 도와줄 테니 낳으라고 하셨다. 큰딸을 임신했을 때보다는 조금 더 담담한, 내려놓으신 반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기 검진을 받으러 산부인과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항상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아시는 듯했다.
"이게 축하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한 아이가 자연 유산되어 심장이 뛰지 않고, 한 아이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남동생이 꾸었다는 구렁이 꿈이 태몽이 맞았나 보다. 은구렁이가 자고 나니 사라졌다고 했는데, 한 아이는 우리와 인연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둘째 딸을 낳았다. 정말 신기한 아이였다.
나는 아이 둘을 키우면 두 배로 힘들 줄 알았다. 그런데 둘째는 아기 때부터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새벽에 우는 일도 거의 없었고, 언니와 함께 있으면 보채지도 않았다.
친정엄마가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아니면 둘째가 정말 좋으셨는지, 스스로 아기를 봐주겠다며 의정부로 이사를 오셨다.
그때부터 나의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군인 가족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치는 일이 많았다. 낡은 아파트, 좁은 공간, 예측할 수 없는 이사, 혼자 감당해야 하는 육아.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그리고 나는 벗어날 수 있다고.
둘째를 품에 안고,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이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금촌의 그 낡은 아파트에서, 나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