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보츠와나 모국어
일 년을 살면서 내가 정확하게 알았던 세츠와나는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뿐이었다. 그 대신, 매일 썼던 그 인사말은 평생 가도 잊지 않을 자신이 있다. 현지 문화에 대해 너무 성의 없던 거 아니냐고 누가 핀잔을 준다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사실 모두 영어를 쓰는 문화에서 그 두 표현만 제대로 할 수 있어도 실생활에서 대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사람들은 나의 보츠와나어 사용을 반겨주었다.
나는 경력을 통틀어 우리나라에서 영어 전담을 2년 해봤고 3명의 원어민 교사와 근무를 해봤다. 그 세 명은 모두 배경과 성격과 스타일이 달랐다. 처음 만난 사람은 그 학교에서 4년째 근무 중인 영국 남자로 조용하고 젠틀했다. 한국에 온 지 4년이 되지만 사람들이 본인에게 영어로만 말을 하기 때문에 한국말을 쓸 일이 없어 지금도 할 줄을 모른다고 했다. 두 번째는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흑인 여성으로 인천에서 2년을 근무하다 서울로 근무지를 옮겼는데 한국어를 몰라도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우리말을 배울 필요성을 못 느꼈다. 세 번째는 대만계 미국인 여성으로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을 경험하고 싶어서 온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 어바인(Irvine) 출신이라 우리나라에 대해 친숙하고 BTS를 좋아하며 한국어 공부도 매우 열심히 했다. 이중, 한국에 이삼 년 일하면서 한국어를 마스터해 돌아가겠다는 목표가 분명한 마지막 원어민 교사가 특별한 경우이고 보통은 앞선 두 원어민처럼 한국에서, 특히 서울에서라면 영어만으로 사는데 큰 지장이 없기 때문에 한국어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영어권은 아니지만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한국인들의 열의가 워낙 크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영어만 가지고도 한국에서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
내 동생은 르완다에 2년을 살면서 현지어인 키냐르완다어를 꽤 잘했고 일상생활에서 늘 그 언어를 썼다. 코이카에서 언어 교육을 꾸준히 시킨 효과도 있을 테고, 본인 노력의 성과이기도 했다. 영어처럼 돌아와서도 평생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딱 거기서만 사용할 수 있는 거지만, 현지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배우고 연습했던 것이다. 반면, 같은 아프리카 대륙이라도 보츠와나는 영어권이라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나는 우리나라 원어민 교사들처럼 현지어를 배울 필요성을 못 느꼈다. 고령의 어르신이나 어린 꼬마들과는 영어 소통이 불가능했지만 평소에 내가 만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었다. 보츠와나의 부유층에서는 자녀에게 모국어인 세츠와나를 아예 가르치지 않기도 하는데, 완벽한 고급 영어를 마스터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좋은 유치원을 보내고 집에서도 영어만 쓴다고 했다. 나도 보츠와나 생활의 메인 목표 중 하나가 영어 수준을 확실히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하는 일이 사실 집안일과 영어에 관한 것뿐이었다.
10월 어느 날, 평소 얘기를 많이 나누는 편인 학교 청소 아주머니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문을 여셨다.
- 나는 네가 걱정스럽다.
/ (갑자기 무슨 말이지?) 왜요?
- 일 년이나 살다가는데 세츠와나를 하나도 모르니까.
/ (그게 그렇게 심각한 일인가?) 한국 가서도 구글에서 배울 수 있어요. 돈 워리.
'보츠와나에서도 쓸 일이 없었는데 세츠와나를 알아갈 필요가 있을까요?'가 솔직한 마음이었지만, 나는 '구글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부드럽게 넘어가야 했다. 쓸모가 있건 없건 뭐든 알아두면 좋은 것이고 내 평생 특별한 곳으로 남을 이곳의 언어를 기념품처럼 머릿속에 담아 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그렇게 스와힐리어를 잘하던 내 동생도 귀국하자마자 다 잊어버렸다고 하니 예정된 인간의 망각 앞에 배움의 노력을 쏟아붓기 아까운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현지어가 아쉬웠던 때가 있긴 했다. 급식에 사용되는 옥수수 빻는 일을 하시러 동네에서 할머니 세 분이 일주일에 몇 번씩 학교에 오셨는데, 그중 한 분을 보면 왠지 외할머니 생각이 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세츠와나로 계속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웃는 얼굴은 참 선하셨고,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내 막귀가 정말 안타까웠다.
* 안녕하세요 : 두멜라 마 (Dumela, Mma), 두멜라 라 (Dumela, Ra)
* 감사합니다 : 께 알레보하 (Ke a leboga)
- 상대방이 한 명일 때는 두멜라(Dumela), 여럿일 때는 두멜랑(Dumelang)
- 남자(Mr.)는 라(Ra), 여자(Ms.Mrs.)는 마(M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