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은 초등학교 선생님
후배의 와이프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의 중등교사인데 올 3월부로 사표를 냈다고 했다. 임용 통과해서 공립학교에 근무하던 '공무원’이 맞냐고 나는 몇 번을 되물었다. 어떤 스토리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나보다 경력이 적은 내 또래의 교사가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이 시대 직장인 중 사표를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갈 만큼의 배포나 확실한 비전이 있지 않은 이상 우선은 있던 자리를 계속 지키는 게 보통의 삶이다. 물론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옛날에나 쓰던 말이지, 요즘은 이직률도 높고 젊은 세대 사이에선 퇴사 후 세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이기도 하며 서점의 베스트셀러들은 하나같이 소확행, 워라밸, 욜로 등의 용어로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자신이 그 변화의 물결에 올라탈지의 여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특히 공무원 집단은 고용의 안정성을 무기로 수많은 이직과 사직의 충동을 물리치고 있고, 나라의 경제 구도가 크게 나아지지 않는 한 공무원은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선호 직업 최상위에 해당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교사가 학교를 그만 다니기로 ‘실천’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직장 생활이 힘든 것은 보통 일보다 사람 때문인데 내가 보기에 교사는 대략 4가지의 인간관계에 얽혀있다. 대상은 관리자(교장, 교감), 동료 교사, 학생, 학부모이고 어떤 관계도 쉽지 않으며, 이는 학교급과 단위 학교에 따라 분위기의 차이가 크다. 초등학교 평교사로 일해 온 지난 십여 년 동안 내가 속한 조직에 대해 점점 확고해진 인상이라면 학교는 대외적으로 권위가 약화되고 교사의 설 자리는 좁아졌으며, 내부적으로는 직급에 기반한 보수적인 문화가 아직 견고하다. 초등학교의 기능이 교육보다 '보육'을 향하다 보니 업무의 정체성이 변하고, 매년 업무 분장 때마다 초조하게 인사권자의 결정을 기다리는 일도 지치며, 날로 과격해지는 학생들과 자식 사랑이 과한 학부모들에 대한 부담도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이제는 중등뿐만 아니라 초등에서도 담임업무 기피 현상이 나타나는 게 현실이다. 지금의 20, 30대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과연 자신이 정년퇴직 때까지 교사직을 유지할 것 같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많은 교사들이 직업병이든 원래 성향이든 간에 여전히 선생님의 역할과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긴 하지만, 교사의 자부심이 높아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자신의 경험에 따라 나와 시각을 달리하는 교사도 있겠지만 그 차이가 심할 것 같진 않다.
이 같은 한국 분위기에 익숙한 나는 보츠와나에서 일 년간 근무하며 새로운 교직 문화를 경험하게 됐다. 교사들은 직급에 따른 의사소통 구조가 수평에 가깝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며, 사회는 학교와 교사를 존중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교사의 가르침에 수용적이고 학부모들은 협력적이었다. 물론 가끔 학생들에게 불친절한 현지 교사들을 마주칠 때면 내 학창 시절에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교사들과 오버랩되는 등 인식의 변화가 필요해 보이는 측면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조직의 권위가 살아있다는 점에서 학교가 학교답다는 인상을 받았다.
보츠와나는 스승의 날(Teachers' Day)에 모든 학교가 쉬고 지역 교육청은 교사들을 위한 행사를 여는데 6월 7일에 카니에 교육청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본 소감을 말하자면, 나는 교사가 된 후 처음으로 자긍심을 갖고 이 날을 기념했던 것 같다. 본질이 왜곡되지 않는 한, 그 의미는 생생히 다가오는 법이다. 나도 한국의 많은 교사들처럼 우리나라의 5월 15일에 대해 불편감이 있는데, 보츠와나의 스승의 날에는 내가 '교육자'라는 사실을 되새겨볼 여유를 찾았던 것 같다. 나도 9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옛날 사람'이라 교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지만, 교사가 되어보니 세상은 이미 변했고 내가 학생일 때에 겪었던 학교의 좋지 않은 모습들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물론 어느 조직에나 미꾸라지는 있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으니 적절한 비판이 동반되어야겠지만, 우리 사회에 학교와 교사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좀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8살부터 40살이 된 지금까지 학교만 다니고 있네..”
언젠가 친한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입학한 뒤로 쉬지 않고 학교만 다녔는데 그럴듯한 성과 없이 나이가 벌써 불혹이 되었다는 것이다. 초등 교사들은 성향과 경험들이 비슷한 편이므로, 경력이 어느 정도 된 교사라면 저 한마디에 축약된 의미를 약간은 추측하고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직업을 가진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지만 오직 월급 때문에 일을 한다면 슬픈 일이다. 20대 중반부터 학교가 '직장'인 삶이 시작되며 다양한 희로애락이 나를 통과했고, 당장 학교를 뛰쳐나가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내가 계속 교사일 수 있게 하는 내적 동기는 때마다 여러 모습으로 등장해주었다. 그게 가르치는 '보람'이든 진심이 통하는 '사람'이든 직업의 '안정성'이든 나만의 '자아실현'이든 간에 말이다. 미래 언젠가에 선생님을 그만 하게 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진, 이 숙명 같은 교사직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이들을 위해 계속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순수한 학생, 따뜻한 동료와 학부모가 한 둘은 있어 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기에 나는 그에 힘입어 내 직장 '초등학교'로 오늘도 출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