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푸르게 푸르게

젊음의 조건

by 다온

똑똑똑, 생각이 부드러우십니까

지방에 내려와 있는데 아파트 관리실에서 전화가 왔다. 이번 달 수도계량기가 101톤까지 돌아가 있어 확인차 연락을 하셨단다.


- 몇 명 살아요? 물 새는 데 있어요?


1인 가정이고 물 새는 데도 없다. 관리실 직원분은 현관문 번호를 알려주면 경비아저씨와 함께 우리 집에 방문해 확인해보겠다 하셨고 나는 흔쾌히 알려드렸다. 그동안 물이 새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내가 집을 떠나 있는 며칠 사이에 뭔가 터졌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참 뒤 '물 새는 곳이 없다, 그럼 계량기 이상이다, 세대주가 직접 수도사업소에 전화해서 계량기 교체를 요구하라'는 답이 왔다. 나는 수도사업소에 전화를 걸었고, 몇 개의 부서로 거듭 넘겨져 설명을 반복해야 했고, 마침내 담당자와 연결이 됐다. 접수는 됐고,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단다. 이후 소식이 없어 나는 담당부서에 두 번 더 전화를 걸었고, 계량기 교체는 한 달만에 완료되었다.


우리 집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외벽은 깨끗하게 페인트칠이 되어있고 내부는 리모델링을 해서 겉으로는 연식이 크게 티 나지 않는다. 편, 보이지 않는 곳에 있 수도관이나 난방선은 건축 당시 그대로라 부수고 새로 짓지 않는 한 개선이 미미하다. 문제가 생기면 크게 터지고, 완벽하게 고칠 수도 없다. 살살 달래 가며 자주 정비하는 수밖에. 난방 효율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수도관 청소는 꾸준히 실시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청소 중엔 단수가 되고 다 끝나면 수도꼭지를 열고 한동안 녹물을 흘려보내야 하는데 노후화 시설 관리로서는 이게 최선이며, 정 못 미더우면 이사를 가면 된다. 호박에 줄을 긋고 색칠을 하면 언뜻 수박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열어보면 안다. 본질은 내부에 있다. 말끔한 내 집에서 존재감 없던 구형 계량기가 어느 순간 백 톤이나 휙 돌아가 제 존재를 드러낸 걸 보라.


우리는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려 애를 쓴다. 그중 가장 효과있는 방법이 피부과 방문인데 피부를 올리고 당기는 의느님의 손길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와버린 세월을 살짝 되감을 수 있다. 여기에 머리숱은 가발로, 흰머리는 염색으로, 나약해진 몸은 옷으로 좀 더 커버해볼 수 있다. 그런데 외모에서 오는 효과가 늘 힘을 발휘하는 건 아니다. 무심히 뱉은 한 마디에 모든 게 들통나기도 하는데, 아무때나 '라떼'를 장전하거나 생각의 고리가 과거에서 움직이질 않아 사람들과 소통이 어려워진다면 그간 자신이 치장에 쏟았던 모든 노력이 무효화될 수 있다. 요즘은 숫자에 0.8을 곱해야 진짜 나이라지만 전통적 기준으론 나도 십 수년만 지나면 장년층이고, 그때쯤이면 나도 남의 말을 더 안 듣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개인의 신념은 옳든 그르든 시간을 타고 더 굳건해지기 마련이고, 고인물은 썩는다고 하지만 고여있는 게 편하다는 것까지 알아버린 이상 나태와 편견이 저만치서 손흔들때 선뜻 응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젊음의 본질은 생각에 유동성을 허하는데 있다. 나이 어린 꼰대들을 봐도 우리는 더이상 젊음의 기준을 태어난 해와 겉모습에만 두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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