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스탑오버를 놓칠 수 없어 시내로 나갔습니다.
이럴 땐 속전속결 족집게 강사가 필요한 법이죠.
대학생 나 홀로 여행객은 손님이 필요한 수많은 오토바이 기사님들 중
무난한 인상의 아저씨와 하노이 몇 곳을 빠르게 돌기로 얼마에 협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오토바이들이 사방에서 물밀듯 쏟아집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사선으로.
저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된 것 같았습니다.
식겁했습니다.
이대로 객사하는 게 아닌가 싶었죠.
어느 방향에서 받혀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다 싶을 만큼
차량의 바다 위에 떠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이 나라 교통규칙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죠?
다 제갈길을 가네요.
무심히,
서로 방해하지 않고,
차선마다 가드라인이 설치된 것처럼.
모두들 성난 파도 위에 유유히 안착한 서퍼들 같았습니다.
저는 덜덜 떨고 있었지만
저를 태운 오토바이는 그 물결의 흐름을 타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데려다주었고요.
섣부르게 걱정부터 쏟아냈던 게 미안해질 정도였어요.
아주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누가 설명을 해준다고 해도
저는 이 문화에 자연스레 녹아들기 힘들 겁니다.
한국에서 스무 살에 딴 운전면허증도 여기선 당장 무용지물이겠고요.
저는 그저 뒷좌석에 앉아 조용히 지켜보는 게 제일 현명한 처사겠지요.
저는 감정 낭비를 밥먹듯이 하는데
외부에도 엄청난 오지랖을 부리곤 하죠.
제 일이나 잘할 것이지.
"너 그렇게 하면 안 돼"
"우리나라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럼 지구는?"
남의 일이라도 사안에 따라선 옳고 그름을 한 번씩 따져볼 만해요.
혼자만 사는 세상은 아니니까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것들에는 민감해지기 마련이고요.
그래서 세상 박자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고 봐요.
아날로그 방식이 편하다고 디지털에 문외한이라면
오히려 세상 속에 스스로의 섬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각자의 리듬이 있는 것이니
가만 지켜봐 주기도 해야 해요.
내 기준에 안 맞다고 상대방이 오류로 치부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내가 신경 안 써도 각자 알아서 잘하고 있다는 믿음도 필요할 테고요.
우선은 본인 박자가 뭔지부터 확실히 알아야겠어요.
그래야 내 것이든 네 것이든 조율이 가능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