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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팔아 오늘을 샀어
페이지의 주제는 여백
일본 - 아소(Aso)
by
다온
Sep 5. 2021
배낭여행의 묘미는 일정에서 자유롭다는 것인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될 때가 있죠.
기차 무제한 이용권 날짜가 박혀있을 때처럼요.
마그마가 들끓는 장면만을 위해
전 날밤에 찾아온 이 동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낀 거 있죠.
이 날의 여행객들에게
아소산은 자신의 민낯을 철저히 가렸습니다.
여기도 백두산 천지처럼
몇 대가 덕을 쌓아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곳인가요?
하필 왜 오늘이람...
저는 숙소에서 만나 동행했던 독일 친구와의 담소만 남겨둔 채
버스를 타고 하산했습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요.
날씨가 다시 화창해졌습니다.
이럴 거면 아까 도대체 왜 그랬던 거야?
기차역에서 바라본 아소산은 푸르렀어요.
그런데 떠날 시간이 다 됐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올라가 볼까 싶었는데
냉정을 되찾았습니다.
즉흥도 좋지만
이 정도의 즉흥까지 용납되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이대로 남겨두자.
이대로 넘어가자.
이것도 내 여행의 한 페이지이고,
이 페이지의 주제는 '여백'이었던 거야.
그런데 몇 달 뒤,
한국에서의 어느 흔한 내 일상 속에
아소산이 폭발했다고 속보가 난입했어요.
잘 아는 어떤 곳에 사고가 난 것처럼
더 마음이 쓰였어요.
단 하룻밤 묵었고
날짜로는 단 이틀을 거닐었을 뿐인데
그때 그 모던하고 친절하던 백패커스의 안부도 궁금하고
아담하던 동네 구석구석도 생각났어요.
다들 큰 탈 없으셨길 바랍니다.
여행이란 그런 것 같아요.
그 모든 게 단지 스쳐갈 뿐이란 걸 처음부터 알고 있지만
마음에 한 줄은 그어놓죠.
아무것도 안 남은 것 같아도
꺼내보면
뭐라도 나오더라고요.
오늘 저의 입꼬리는
그 가느다란 추억을 먹고
살짝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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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온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360일의 보츠와나
저자
생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온다면 감격에 젖어 I did it my way~를 열창하고 싶습니다. 그 패기를 향한 이런저런 여정들을 최대한 사랑해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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