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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언덕

르완다 - 키갈리(Kigali)

by 다온
(바람소리가 크게 들리니 볼륨을 줄여주세요♡)


동생이 수도 키갈리에서 코이카 활동 2년 차를 맞던 해,

저는 생애 처음으로 아프리카에 입성했어요.

동생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그 대륙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못 가본 상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에겐 계기라는 게 꼭 필요한 것이겠지요.

입국시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가 필요했고

비자는 30일짜리 도착비자였어요. 비용은 30달러고요.


깨끗하고 안전하다!

키갈리의 첫인상이었어요.

르완다는 비닐봉지 반입이 안된다고 해서 수하물을 쌀 때 각별히 더 주의했던 기억이 있네요.

길가에 쓰레기도 없고 모든 게 소박하게 잘 정리된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거리에 경찰들이 많이 보여서 안심이 됐어요.

군경의 힘이 세다는 건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만

일시적 방문자로선 자질구레한 치안문제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생겼습니다.

천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땅(The land of a thousand hills), 르완다의 별칭이죠.

그래서인지 언덕에 집들이 빼곡히 차있는 게 360도로 보여요.

공항 활주로가 언덕의 윗동네와 높이가 나란해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유난히 집들도 가깝게 보이고요.

면적은 우리의 사분의 일 정도인데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 1500m 고원지대라 연평균 기온이 20℃로 일 년 내내 온화해요.

콩고민주공화국, 탄자니아, 우간다, 부룬디로 둘러싸인 내륙국가라 바다는 없어요.

그래서 해산물은 대단한 음식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통조림이나 냉동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땡큐죠.


인구는 1300만 명으로 인구밀도가 매우 높아요.

주로 농업, 그중에서도 커피 재배가 다수인데 특별한 산업이 없으니 경제문제가 심각해요.

우리나라도 ODA 공여국으로서 역할을 해오고 있어요.

키갈리에 한국대사관이 있고 여러 지역에 코이카(KOICA) 단원들이 파견되어 있습니다.


동생은 현지인들과의 소통에 거의 키냐르완다어(Kinyarwanda)를 썼어요.

영어도 공용어지만 과거 벨기에 식민지여서 일반 사람들은 불어에 더 능숙하대요.

그러니 불어를 못하는 외국인들은 현지어를 배워야 일상생활이나 업무가 수월하겠죠.

최근엔 불어 사용이 약해지고 영어를 강조한다고 해요. 2009년부터는 영연방에 가입했고요.

제가 영어밖에 안되다 보니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동네 아이들과 아무 대화를 못 나눠서

아주 많이 아쉬웠어요.

사실 저는 키갈리를 여행했다고 말하지 않아요.

3주간 살다온 거였어요.

'삶이 여행'이라는 멋들어진 말을 잠시 인용해도 될까요.

동생의 동선을 따라다니기만 했거든요.

외국을 혼자 다니는 것에 능숙한 저이지만

키갈리에선 동생과 함께가 아니라면 혼자 집 밖에 나가지를 못했어요.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요.

너무 동생만 믿고 온 탓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이곳에 대한 얕은 정보라도 잘 구해지지 않았어요.

원래 낯선 곳에 가면 버스 타고 한 바퀴 둘러보는 것부터 하는데

여긴 정류장 표시도 없고 막상 타도 어디에 정차하는지를 모르니 그것부터 실행이 불가능하고,

수도라서 웬만한 중심가는 길이 잘 닦여있는데

집과 공터들만 보면서 하염없이 아스팔트 길을 걷을 수도 없고,

일반적으로 모든 이동엔 '모토'라는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하는데

목적지를 말하거나 가격 흥정을 하는 것에도 무지하니까요.


더 근본적인 이유는, 갈 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최고 번화가엔 식당, 카페, 호텔, 상점 등이 즐비해요.

그런데 집에서 멀기도 하고 구경차 한 번 가보니 흥미가 안 생기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20대 청춘들이 어떤 연유로 현재 이곳 지구별 시골 한구석에 봉사를 하러 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사뭇 더 대단해 보였어요.

인생에 큰 밑거름이 되겠지요.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잖아요,

누구는 직접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고 누구는 남의 계획대로 따라가는 걸 좋아하죠.

누구를 졸졸 따라다닌다는 게 처음엔 편한 듯싶다가 나중엔 답답하더라고요.

네, 저는 확실히 전자쪽입니다.


한편, 한적하고 간소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겐 이곳이 최고의 스팟이 될 거예요.

복잡 살벌한 한국에 지치고, 빠르고 편리한 것에 욕심이 없으시다면요.

실제 르완다에 만족하거나 자신의 비전을 발견해 파견 종료 후에도 계속 사는 이들도 있는데

그들이 꿈꾸는 삶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볼 게 없다고 해서 르완다에 관광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그것도 아주 유명한 게 하나 있어요.

바로, 고릴라 트레킹(Gorilla Trekking)입니다.

친환경여행으로, 산길을 올라가서 고릴라 가족을 조심히 바라보고 다시 내려오는 거예요.

멸종 위기인 마운틴고릴라는 르완다, 우간다, 콩고 등에서만 서식 중이고

2021년 현재 880마리가 남아있대요.

거기에 다녀왔냐고요?
아니요.

고릴라에 큰 관심도 하고 거리도 멀고 무엇보다, 비싸서요.

러는 들거든요.

동생이나 다른 단원들도 갈 생각조차 안 했대요.

아무리 돈보다 경험이 중요하다 해도

우리가 고릴라 한 시간 보는데 100만 원을 쓸 만큼 여유로운 입장들이 아니니까요.


르완다는 모르더라도 <호텔 르완다>는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영화죠.

1990년에서 94년까지 투치족과 후치족의 내전,

다시 말해 정권을 쥔 소수 종족 투치를 다수 종족 후투가 몰살시킨 역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 무대가 되었던 밀 콜린스 호텔(Hotel Des Mille Collines)이 지금도 있는데

정문을 들어서니 한쪽에 'Never Again'이라고 적힌 기념비가 있더군요.

80일간 100만 명이 사망하고 200만 명이 난민이 된 엄청난 종족 전쟁이었기에

현재 르완다에선 부족을 묻는 것이나 가족관계, 나이 등에 대한 질문을 금기시한다고 해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동족'상잔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군요.

나라의 붕괴는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내분 때문인 경우가 많죠.

고조선부터 나열해보면 우리도 그런 역사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현재의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하아-

더불어 살아가는 한국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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