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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말레이시아 - 페낭(Penang)

by 다온

조지타운(George Town)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어요.

오래된 거리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죠.

향수와 낭만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합니다.

관광객들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여행해요.

물론 저도 렌탈을 했습니다.

차 핸들은 못 잡아도 자전거라면 언제 어디서든 자신 있거든요.

영국식 차선과의 첫 만남이었죠.


여행 때 길을 헤매고 다니는 편이에요.

공간감각능력이 떨어지고 지도를 잘 못 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여행이라 생각하기에

그게 문제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한 번 지나간 길은 잘 기억해요.


그날도

동네를 헤집고 다녔어요.

그런데

사고가 났습니다.


신호가 바뀌고 막 지나가는데

왼쪽에서 차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주차장에서 나오던 차였어요.

저는 차와 부딪쳐 고꾸라졌어요.

왼쪽 무릎을 땅에 박았는데

긁힌 흔적은 물론

다른 외상도 없으니

차주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런데 걸어보려고 했더니 못 걷겠는 거예요.

아픈 것보단 이 상황이 무서워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차주에게 당장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놀라서 바보같이 대처한 거죠.

경찰에 신고를 했어야 하는데..

그런데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게

그 차주와 주차장 할아버지는 제가 신호를 잘못 보고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왼쪽 차선을 타고 있었고 녹색불로 바뀌고 움직인 게 맞는데

뭐가 잘못됐다는 건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었어요.

차주가 병원을 알아보는 동안 차에서 기다리던 저에게

허름한 차림의 그 주차장 할아버지는 검은 봉지를 내미셨어요.


마일로와 카스테라 한 봉지였어요.


"혼자 온 거야? 여기 친구 없어? 부모님한테 전화하지 마. 걱정하시니까"

그리고 몇 번을 반복하셨어요

아주 친절하고 따뜻하게 웃으시면서.

"돈 크라이. 돈 워리. 스마일"

웬 여자애 하나가 남의 나라 와서 다치고 울고 있는 게 불쌍해 보이셨나 봐요.

솔직히, 겉모습으로 봐선 제가 뭐라도 사드려야 할 입장 같은데

오히려 할아버지가 저에게 선물을 쥐어주셨어요.

저는 고마움에 더 울컥했습니다.


인도인 의사가 있는 병원에 도착했고

저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어요.

의사는, 골절이 아닌 이상 처치할 게 없다며 진통제 처방만 해줬어요.

그 와중에 들었던 생각이 뭐냐면

흥분하지 않고 그 의사에게 또박또박 말했다는 거예요.

필요한 정보를 잘 전달해줬다며 의사에게 칭찬도 들었고요.

'아, 내 영어가 늘긴 했구나'


얼음찜질을 하라기에 숙소로 돌아가 직원에게 얼음을 얻어 무릎에 올려두었어요.

대낮에 아무도 없는 라운지에 누워 카스테라와 마일로를 먹었습니다.

그때 그 비비드한 마돈나 얼굴을 잊지 못합니다.

이게 페낭 여행 첫날이었고 그 후 며칠 더 있었는데

그 주차장 할아버지께 내 회복 소식을 알리고 싶어서

그쯤 어딘가로 찾아가 봤지만 거기가 어딘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페낭 하면

다른 것들보다

제겐

마일로와 카스테라입니다.


그 할아버지 같이 따뜻하신 분들은

이미 마음이 부자이시겠지만

겉으로도 윤택하게 잘 되시면 좋겠습니다.

착하게 살면 손해보는 세상이라고 말들하지만

한편으론, 이 세상엔 나쁜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많다고도 하죠.

우리 사는 곳이 이렇게 뒤죽박죽 시끌복잡합니다.

어쨌든 결론은, 살아볼만한 세상이라는 거겠죠.


할아버지께 제가 미처 전하지 못했던 감사는

다른 귀인으로부터 더 큰 호의로 보답받으셨길

진심으로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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