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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크리스마스 2

짐바브웨 - 빅토리아 폴스(Victoria Falls)

by 다온


잠비아 쪽 빅토리아 폭포가 워낙 수량이 풍부하고 가까운 거리라

우산을 썼음에도 다 젖었고

저는 그 상태로 짐바브웨를 향했어요.

저쪽 국경까지 데려다주는 운송서비스가 문밖에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양국을 오가며 폭포를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처럼 걸어갔어요.

안 물어봐서 모르겠지만 우리 돈 몇 천 원 정도의 비용일 텐데

넉넉히 20분 정도 천천히 걸어가면 될 걸 굳이 지출할 필요 있나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뭐라도 해봐야 한다는 건 진리예요.

특히 여행할 때 더 실감합니다.

나이 들수록 돈은 더 많아질 수 있지만 시간과 체력은 아쉬워지잖아요.

사실 벌써부터 체감되기는 한데

그래도 아직까진 아무 문제없습니다, 하하.


짐바브웨 출입국 사무소가 나오기 전에 빅토리아 폴스 다리(Victoria Falls Bridge)가 있어요.

저는 잠비아에서 멀리 이 다리를 처음 봤을 때

레고 조각 하나를 양쪽에 살짝 걸쳐 놓은 듯 정말 귀엽고 예뻤어요.

꿈의 세계로 나아가는 사다리가 허공에 떠있는 것 같기도 했고요.

이런 어마어마한 협곡 자체가 자연의 신비인데 그 사이를 잇다니,

그게 두 나라의 국경이 되다니.

다리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다 마침내 그 위로 올라선 순간

괜스레 성취감이 느껴졌어요.

와- 나도 여기에 왔다!


굵직한 협곡들 아래로 세차게 흘러가는 잠베지강의 엄청난 위엄 앞에 절로 숙연해집니다.

이 다리의 정중앙엔 111m짜리 번지점프대가 있어요.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데 사람들은 이 높이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네요.

160달러나 내고 말이죠.

누가 시켜서 하는 거라면 지옥불로의 하강이겠지만

자신의 담대함을 시험코자 하는 이들의 자발적인 도전이니 별천지에 다녀온거라 해두죠.

사람들은 쓰리, 투, 원 끝에 두 팔 벌려 비행을 했고

행인들은 그들의 용기에 열렬히 박수를 보내주었어요.


카자 비자를 샀기 때문에 저는 별도의 비용 없이 짐바브웨로 입국했고

곧 빅토리아 폭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잠비아보다 짐바브웨 사이드의 경관이 훨씬 멋있고 넓다더니

입장료는 10달러 더 비싼 30달러네요.

짐바브웨의 경제가 파탄 난지도 오래인데

이리도 탄탄한 달러 확보 수단이 있다는 것만큼은 안 부러울 수가 없네요.


자, 그럼 이제 구경을 해볼까요.


빅토리아 폭포는 폭이 1.6km가 넘고 낙폭이 108m로 세계에서 가장 긴 폭포입니다.

짐바브웨 쪽엔 12개의 뷰포인트가 있는데 우리가 도보로 볼 수 있는 건 실제 규모의 극히 일부예요.

헬기투어를 해야 전체 조망이 가능한데

저는 리빙스톤 상공에서 이미 봤어요.

착륙 전 비행기 창문으로요.

물이 지표면에서 광범위하게 흐르다가 길게 쩍 갈라진 지층 사이로 떨어지는데

신비하고 장엄했어요.

그러니 땅에서 보면 그 협곡의 깊이와 물줄기의 세기가 어떻겠어요.


사실 돈 들여 하늘에서 제대로 관광코스를 누렸다면 더 큰 스릴을 얻었겠지만

저는 도보로도 충분했어요.

엄청난 양의 물이 내 눈앞에서 콸콸 쏟아지고

그 소리가 사방에 가득하고

무지개가, 그것도 쌍무지개가 여기저기 걸려있는데 더 바랄 게 있나요.


초록의 평지가 나오더니 폭포가 가장 넓게 펼쳐졌어요.

거대한 쌍무지개가 깊숙하고도 높게 떠있었고요.

오, 여기가 바로 환상의 나라로군요.

여기서 어떤 여행객과 서로 사진을 찍어줬는데

이 물을 그대로 느껴야지 왜 우산을 들고 있냐고 하더라고요.


저도 내팽개치고 싶었다고요.

폭포의 물안개와 물방울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었다고요.

어차피 옷은 다 젖었다고요.

그런데 카메라가 나와있고 가방 속 물건들도 젖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가려야 했다고요.

혹시라도 다음에 또 온다면 방수가방을 꼭 챙기겠어요.

물벼락 맞을 기대로 오겠어요.


1시간 정도 머물렀을까요.

이제 돌아가도 될 것 같아요.

티켓값이 옆 나라보다 만원 더 비싼 이유를 알겠네요.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는 예 여기 하나 추가요.


다시 다리를 건너 잠비아로 가야 해요.

못내 아쉬워 다리 위 난간에 기대 멀리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세 명의 흑인 여학생이 저에게 다가와 어디서 왔냐고 물었어요.

싸우쓰 코리아라고 하니 어찌나 반가워하던지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대요.

그러면서 저에게 사진을 같이 찍어달래요.

연예인들이 이런 기분인가, 난 일개 한국인인데 이래도 되는 건가 하면서 찍긴 했습니다.

아무튼 그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한바탕 웃고 난 후 다리를 건널 힘이 더 생겨났던 것 같아요.


아까 그 폭포 입구로 다시 돌아와 두리번거리며 택시를 찾는데

한국인 세 명이 합승자를 구하길래 리빙스톤 시내까지 같이 갔어요.


세계 '몇 대'하면 우린 호기심이 발동하잖아요, 특히 더 욕심이 생기잖아요.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를 이제 클리어했네요.

내일은 잠비아에서 보츠와나로 들어가는 날이에요.

아침 일찍 움직일 거라 숙소에 문의해서 택시도 미리 알아놨어요.


눈송이 대신 물방울이 뿌옇게 휘날리던 크리스마스였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왜 일 년에 하루뿐이냐고 서운해하는 사람들에겐

매일이 12월 25일인 것처럼 마인드 컨트롤을 하라는 솔루션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그게 어디 마음먹은대로 되던가요.

열심히 살아가는 본인을 위해 스스로 선물도 줘가며 살아야할 것 같아요, 인색하지 말고요.

소확행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저의 4월 한 때가 이렇게 빛났던 시간도 있었네요.

즐거웠어요.

잘 있어요, 빅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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