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까이 보면 다를 수 있어

보츠와나 - 카사네(Kasane)

by 다온


아프리카에서 사파리는 세렝게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거리도 멀고 비용도 큰데

궁금하다고 다 돌아다닐 순 없으니

우선순위를 정한 거죠.

그래서 세렝게티는 이미 다녀온 바 있으니

보츠와나에 살 때 저는 어떠한 사파리도 가지 않을 생각었습니다.

위시리스트엔 다른 성격의 여행지들로 채졌고요.


보츠와나는 관광국가가 아니에요.

우리나라의 6배 크기지만 사막과 황무지가 99프로고요,

여행지로 손꼽히는 나라들에 비해 솔직히 볼거리가 없어요.

그런데 아프리카를 오래 여행하는,

그러니까 대륙을 횡단 또는 종단할 때 들어가는 코스는 있답니다.


첫 번째는 오카방고 델타(Okabango Delta)예요.

세계에서 제일 큰 내륙 삼각주이자 아프리카의 아마존이라 불립니다.

거점 도시는 마운(Maun)이고 수도에서 비행기로 2시간, 차로 12시간 걸리는데

여기서 델타까지는 차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합니다.

열 시간을 달린다 해도 주변 풍경이 다채로우면 보는 재미가 있는데

좀 살아본 입장에서 보츠와나는 어딜 가나 일관적인 표정이에요.

그냥 '사막'입니다.

그래서 오랜 이동이 더 힘들게 느껴지고, 내 집 앞모습을 굳이 다른 데 가서도 볼 필요 있나 싶고요.

보츠와나의 대표 관광지인 이곳은 지구적으로 의의가 충분한 곳이라

안 가면 나중에 아쉬울 거라 생각은 했지만

결국 저는 패스했습니다.

차로 간다는 건 체력이나 시간면에서 불가능하고

비행기로 가도 어차피 장거리 이동과 내리쬐는 햇빛과 싸워야 하니

그런 것들은 지금 우리 동네에서도 차고 넘치게 경험하고 있다 싶었어요.

제가 많이 지친 상태라 더 그랬을 거예요.

두 번째는 초베(Chobe) 국립공원입니다.

보츠와나 북부에는 아프리카 코끼리의 3분의 2가 살고 있어요.

자국은 코끼리로 인한 인명피해나 산업발전제한 등의 이유로 코끼리 개체수 감소를 추구하지만

세계의 동물 또는 환경단체들은 이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죠.

양쪽 입장이 다 이해가 되어 안타까워요.

카사네(Kasane)는 초베 사파리의 관문입니다.

저도 이 동네로 발령 났으면 좋았겠다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쪽 동료들은 별의별 동물들을 길에서 본다길래요.

코끼리가 집 앞을 다닌다는데 안 신기할수 있나요.

대신 동물들 때문에 해지기 전이라 해도 외출을 삼가야 하고 도보는 더더욱 위험하답니다.


명색이 보츠와나에서 1년을 산 사람인데 어디 한 군데는 갔다 와야지 싶었어요.

저는 두 번째를 골랐습니다.

시간과 비용이 최소한인 3시간짜리 선셋 크루즈(Sunset Cruze)를 하기로요.

그래서 리빙스톤에서 빅토리아폭포를 보고 카사네로 바로 들어갔어요.

잠비아와 보츠와나는 초베강(Chobe Riv.)을 사이에 두는데

바지선으로 2분 정도 건너면 도착입니다.

배를 타고 지나가는데 대우건설이 한창 건설 중인 다리가 보이더라고요.

그때가 19년이었는데 올해 5월에 정식 개통되었다네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아프리카에선 내 집이 있는 보츠와나가 내 나라 같던걸요?

귀국하는 심정이 참으로 편안했습니다.

카중굴라(Kazungula) 이미그레이션에서 카사네 숙소까지 택시를 탔는데

젊은 기사님이 바가지를 씌우려 하더라고요.

웬 중국인이 여행 왔나 보다 했겠죠.

보츠와나의 기본 택시 요금을 아는 '현지인'일 거란 생각을 어떻게 했겠어요.

나 카니에(Kanye)에 살고 있다고, 원래 얼마 아니냐고 물으니

그러냐며 가격을 낮추더라고요.


저는 숙소 사장님이 소개해주신 투어를 했어요.

지금까지 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로 남아있는 세렝게티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많이 궁금했어요.

한마디로, 환상적이었어요.

확실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동물은 코끼리, 버팔로, 악어, 하마가 있었고

강 위에서 바라본 노을 진 풍경에 가슴이 몽글몽글했어요.


최고 중의 최고는

동물들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는 거예요.

세렝게티에선 사파리 차량 안에서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동물들을 맨눈이나 망원경으로 겨우 봤었거든요.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왠지 우리가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더 신이 났어요.

코끼리의 귀여움, 버팔로의 무표정, 악어의 피부, 하마의 덩치가 돋보이고요.

대충 비슷비슷하겠지, 하며 여길 오지 않았다면

그 오만함에 대해 자각할 기회조차 없었겠죠.

아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매체에 보츠와나가 등장할 일이 없는데

2021년 11월 말, 뉴스에서 들려오는 게 아니겠어요?

오미크론(Omicron) 변이의 첫 출현지래요.

세계에 회자되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많지 않은데

보츠와나도 존재감이 뚜렷한 나라는 아니죠.

저도 파견을 가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몰랐을지도요.

문서나 영상으로 접할 기회는 생겼을지 몰라도

내 앞에서 보지 않고서야,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야

정말 안다고 할 수 있나요.

나도 나를 잘 모르는 게 삶 아니던가요.

한 발 또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건

그럴듯한 신기루나 편견이 슬쩍 끼어들 가능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고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안다고 생각해서

함부로 말하면 안 돼요.

단지, 본질에 닿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죠.

사실 들여다본다 해도

다들 말 못 할 사정 하나씩은 안고 사는 거 아니겠어요?

들어보면 이해 못 할 일도 드물고요.

세상만사와 친해질 것까진 없지만

싸우지는 않고 살면 좋겠어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월의 크리스마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