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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였다

탄자니아 - 모시(Moshi)

by 다온


저는 만년설이 참 신비로와요.

네팔에서 히말라야, 스페인에서 시에라 네바다 산맥, 그리고 탄자니아에서 킬리만자로를 보았을 때

가슴이 많이 설렜어요.

비행기를 타고 멀리까지 날아가 차를 타고 구불구불 비포장길을 달리는 나름의 수고를 했음에도

제게 주어진 영광은

맨바닥에서 목이 뒤로 꺾이도록 꼭대기를 쳐다보는 것에 그친다는 체념 때문일까요,

아니면

언젠간 저길 도달해보고 말겠다는 동경 때문일까요.

전자의 확률이 더 높지만 둘 중 뭐든 상관없어요.

제 심장이 기뻐 두근댔다는 게 중요하니까요.


는 킬리만자로공항으로 탄자니아에 첫 입성을 했어요.

르완다 키갈리에서 르와다항공(Rwanda Air)을 타고 갔죠.

여행사에서 공항으로 픽업을 나와 그 차를 타고 한 시간 가량 달려 모시(Moshi)로 갔는데요,

가는 내내 흙길과 마른나무들 뿐이라 내가 도대체 어딜 향하고 있나 싶었는데

갑자기 우후루(Uhuru Peak)가 보이는 거예요.


내가 저걸 실물로 보다니!

네, 킬리만자로의 정상 맞습니다.


저는 모시에서 1박, 세렝게티에서 3박, 다시 모시에서 1박을 하는 패키지를 이용했어요.

마지막 하루는 킬리만자로를 보고 싶어서였죠.

제가 택한 상품의 공식 명칭은 마랑구 루트(Marangu Route)였는데,

그 코스는 킬리만자로의 7개 등산로 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쉬운 길이라네요.

제가 한 것은 둘레길 산책 같은 거였어요.

등산할 마음까지는 안 먹고 와서 가볍게 걷다 온 건데

막상 킬리만자로 입구까지 가보니 정상까지 가는 5박, 6박되는 상품을 할 걸 그랬나 싶더라고요.

내가 여길 언제 다시 와보겠나, 싶어서요.

사실 그럴 거였으면 한국에서 체력 관리를 몇 달은 했었어야죠.

네, 머릿속으로 괜히 욕심 한번 부려본 거였습니다.


저는 여행사에서 보낸 가이드와 둘이서

산 아래를 따라 걸으며 폭포도 보고 식물도 보고 동네도 구경했어요.

이 청년은 볼 일이 있다며 이발소에 들러 한참 수다도 떨더군요.

덕분이라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거기서 저는 요즘 탄자니아 남자들의 헤어스타일을 섭렵하게 됐습니다.

포스터 한 장에 모델 몇십 명의 사진이 있는데 '저걸로 해주세요'하면 되나 보더라고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빛나는(Shining) 또는 하얀(Whiteness) 산이라는 뜻의 킬리만자로.


마랑구 루트 출발점에서 저 멀리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 아래 눈 쌓인 평평한 우후루가 보였어요.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다고,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에서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돼도 좋다는

조용필님의 뜨거운 가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표범 얘기는 실화예요.

사진도 공개됐고,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에도 등장하죠.

표범은 왜 설산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 걸까요.

자의였을까, 타의였을까.

산에 오르지도 않고 밑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인 저는,

이 결론 나지 않는 철학적 사유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실상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

바람결에 그 생각을 놓쳤지만요.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아직 낯선 세계입니다.

정보도 없고, 관심 밖의 영역인 게 사실이죠.

유니세프 같은 국제구호단체 후원 홍보가 아니고서야

우리 삶에 보이는 뭔가가 없으니까요.

저도 특별한 계기로 그 대륙에 닿게 된 거지,

아니었음 계속 몰랐을 거예요.

그런데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하잖아요?

까탈스러운 제가 나중엔 일 년을 살러 가게 되더라니까요.

제가 탄자니아 여행 때 이용했던 여행사의 사장님은 젊은 한국 남자분이셨어요.

이분은 한국의 대기업 직원이었는데 여행차 왔다가 현지인의 제의로 동업하게 되셨더라고요.

무엇이 그를 아프리카 시골로 붙들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제가 느낀 이곳의 매력의 일부와 겹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예요.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라이언킹이 전 세계에 널리 알린 말이죠.

이쪽 언어인 스와힐리어(Swahili)로 걱정 마(No, worries)!라는 뜻인데요,

제가 거닐었던 길가의 절벽 한 편에서도 누가 적어둔 저 말이 보였고,

탄자니아 어디서든 실제로 자주 들었던 말이에요.

아무 생각 안 하고 멍하게 있는데도 누군가 저에게 저 말을 하던데

그만큼 제 표정이 심각했단 말이겠죠? 음..

길에 뽈레뽈레(Pole Pole)라고 적힌 팻말도 있었는데요,

이건 천천히(Slowly)라는 뜻이랍니다.


제가 아프리카의 초원을 누비면서, 그리고 하염없이 산을 바라보며 배운 두 가지가

바로 그게 아닌가 싶어요.


걱정하지 마, 천천히 해.


어쩜 저 말이 필요해 저 땅에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저 말만 지키면 제 삶이 풍요로워질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렇게 해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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