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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크리스마스 1

잠비아 - 리빙스톤(Living Stone)

by 다온


저는 케이프타운에서 영국항공(British Airways) 직항으로 리빙스톤에 들어갔어요.

공항은 아주 아담했고

입국자들은 모두 저와 같은 목적으로 온 듯 했어요.

빅토리아 폴스(Victoria Falls)말이예요.

폭포는 짐바브웨와 잠비아 양국에 걸쳐있는데

저는 양쪽 모두에서 볼 생각이어서 어디로 입국해도 상관없었어요.

그런데 짐바브웨쪽 항공과 숙소가 훨씬 비싸고

리빙스톤이 배낭여행자에게 더 어울려 보여 선택은 수월했죠.

폭포에서 한국과 일본 단체여행객들을 만났는데

다 저희 부모님 또래이시고 다 짐바브웨에서 묵으시더라고요.

저도 나이 들고 돈 더 많이 생기면 나중에 거기 가보리라 마음 먹었답니다, 하하.

참, 비자는 리빙스톤 공항에서 잠비아-짐바브웨 통합인 카자 유니 비자(KAZA UniVisa)를 받았어요.

미화 50불이고 30일 이내에 양국을 여러 번 왕래할 수 있는데

저 같은 일반 여행객들은 1회 왕복만 하고 끝날 테니 왠지 아쉽던걸요.


리빙스톤은 작은 마을이에요.

그래도 마트가 있고 거리에 여행자들이 돌아다니니 불편함은 없었어요.

전날 오후에 도착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보니 눈에 띄는 게 딱 하나 있더군요.

숙소 근처에 있는 리빙스톤 박물관(The Livingstone Museum)이었는데요,

이곳 지명이 곧 그의 이름인 걸 보니 대단한 인물인 걸 직감할 수 있었죠.

마감시간도 다 되고 입장료도 있어서 내부 관람은 안 했는데

뮤지엄 마당에 전시된 경비행기 한 대만으로도 대충 느낌은 왔습니다.


구글링은 제게 정답을 알려주었죠.

데이비드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이 유럽인 최초로 거길 발견했대요.

네, 저를 여기로 불러들인 주인공 말입니다.

그는 그 영광을 퀸 빅토리아께 돌렸어요.

여왕의 존함은 곧 폭포의 이름이 되었죠.


제가 머문 게스트하우스에서는 10km 정도 떨어진 폭포 입구까지 셔틀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들에겐 편도 택시비 한 번 줄이는 것도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자, 이제 고대하던 빅토리아 폭포를 마주하기 얼마 전이네요.

입장료 20달러를 내고 성큼성큼 나아가 봅니다.

벌써부터 물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하는군요.

소리가 점점 커지네요.

정체는 안 보이지만 물줄기가 세차서 그 방향은 또렷합니다.

보물을 찾아가듯 두근대며 걸음을 옮기는데 누가 안내를 해주겠다며 다가오네요.

자원봉사자 같은 거래요.

괜찮다고 거절했는데 자연스럽게 저와 동행하는군요.

빨리 가버리기도, 저리 가라 하기도 애매해 그냥 같이 걸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폭포 앞에 섰어요.

잠비아쪽의 하이라이트 구역이었죠.


"오, 너였구나, 너였어!"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런데 정면에 있는 거대한 폭포를 똑바로 바라보진 못했어요.

떨려서? 눈이 부셔서?

아뇨.

때는 수량 풍부한 4월이고 폭포와의 거리도 가까워서 엄청나게 물이 튀었거든요.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당연히 옷도 다 젖었고요.

저는 급히 우산을 꺼내 들었어요.

기분상으론 물을 다 맞고 싶은데

손에 들린 전자기기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되고 쫄딱 젖어서 다니는 것도 부담스러우니

충동을 꾸욱 참을 수밖에요.

저는 사진을 찍고 감탄을 하고 혼자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가만, 아까 그분은 한발 떨어져 계속 저를 바라만 보고 있네요.

점점 초조해 보이기도 하고요.

급기야 그는 시간이 없다며 돌아가야 한대요.

저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어요.

그런데 빨리 팁을 달래요.

아까의 뉘앙스로는 정말 순수한 호의인척 따라붙더니 이거였군요.

세상에 공짜랴 원래부터 없고 이런데선 더 얄짤없다는 걸 모를 리가 없는데

느슨했던 제 잘못이네요.

어쨌든 내 기분이 좋은 상태이고 상대방이 줄곧 상냥했으니 나름의 성의를 표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소지하고 있던 현금이 시내로 돌아갈 택시비 정도뿐이라 한푼도 줄 수가 없었어요.

줄 때까지 따라올 기세였는데 결국 포기하고 가더라고요.

휴, 다행입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긴 했지만 사실은 해코지를 당할까 긴장었거든요.


아무튼 이제 마음이 다시 가벼워졌으니 다시 감상에 집중해야죠.

여긴 무지개가 돌아서면 있고 바라보면 있어요.

커다란 쌍무지개도 짠하고 나타나 주고요.

거세게 내리치는 폭포수에 나의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갔지만

폭포 가운데로, 폭포 옆으로 피어난 무지개는 바래가던 나의 꿈에 색을 입혀주었어요.


자, 저는 이제 저기 보이는 다리를 건너 짐바브웨로 갈 거예요.

거기 빅토리아 폴스는 어떤 모습일까요.

기대가 아주 큽니다.

그런데 음.. 길가에 바분이 너무 많군요.

바분이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보츠와나에서 매일 겪으며 살고 있지만

여긴 남의 동네이니 혹시 얘들이 다른 성격일까 싶어 무서웠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제 앞으로 한 가족이 지나가길래

저도 눈찔끈감고 스르륵 통과했어요.


뚜벅뚜벅 긴 아스팔트 길을 걸어가니 짐바브웨 표시가 보이는군요.

국경을 넘을 땐 왠지 성취감이 있어요, 특히 도보일 때는 더욱 더요.

오늘은 내 세계지도에 깃발 두 개가 꽂히는 날입니다.

신나는 하루예요,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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