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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사에 부쳐

남아프리카공화국 - 요하네스버그(Johannesberg)

by 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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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South Africa)이 제 인식에 들어온 건

2010 남아공 월드컵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그 나라 최고 유명인사가 넬슨 만델라인 걸 알지만 그전까진

흑인 대통령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위인전 속 인물일 뿐

그가 그 나라 사람인 걸 생각 못했던 것 같군요.


남아공의 수도는 3개예요.

행정의 프레토리아(Pretoria), 사법의 블룸폰테인(Bloemfontein), 입법의 케이프타운(Cape Town)입니다.

참고로 주남아공대사관은 프레토리아에 있고

옆 나라인 보츠와나(Botswana), 레소토(Lesotho)를 겸임하고 있어요.

저는 보츠와나에서 일년 동안 살았는데

대사님 이하 직원분들이 수도 가보로네(Gaborone)에서 열린 행사에 오셨던 적이 있어요.

그 넓은 영토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이니 가까운 편이라 할 수 있죠.


헌데 가만, 남아공 하면 생각나는 지명은 따로 있지 않나요?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 말이에요.

저도 수차례 잘못 말한 적이 있는데,

거긴 남아공에서 가장 큰 도시일 뿐 수도가 아니랍니다.

남아프리카에서 남아공이 제일 크고,

남아공에서 제일 큰 도시가 거기다 보니

이름도 익숙하고 모든 항공도 집결하고 회사의 본사들도 자리하고 있네요.


그런데 요하네스버그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 하나예요.

현지에서는 줄여서 조벅(Joburg)이라고 하는데

남아공 사람들이나 남아공 주변국 사람들이나

특히 보츠와나 거주 한인 분들이 본인 또는 가족의 경험담을 자세히 일러주시며

조벅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당부를 하실 정도였어요.

그렇게까지 주의를 주는데 모험심을 발휘할 것까진 없죠.

그래서 저는 조벅에 갈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긴 했어요.


교통의 허브인데 어떡하나요.


제가 살았던 보츠와나는 항공에 있어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어요.

조벅에서 환승을 해야만 합리적 경로와 가격이 가능했죠.

그래서 국외 이동을 할 땐 어쩔 수 없이 조벅으로 우선 가야만 했어요.

가보로네에서 조벅까지 비행기로는 편도 약 10만 원에 1시간 이내에 도착하고,

버스로는 편도 약 4만 원에 6시간 안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제가 두려움에 떨지 않았던 건, 둘 다 공항 안에 내려줘서였어요.

공항이 커서 환승시간이 지루하지 않았고

스케줄상 공항 밖에서 1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일 때도

근처 숙소들은 기본적으로 픽업과 랜딩 서비스를 해줘서 안도했어요.

그렇다보니 한 해 동안 제가 조벅에 출현한 횟수는 여러 번이지만

실상 그 도시의 땅을 밟았다 할 순 없으니

간 것도 아니고 안 간 것도 아니게 된 거죠.

그래서 조벅은 제 여행의 기착지 목록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굳이 올리자면, 조벅공항(O.R Tambo)에 다녀왔다고만 표기할 수 있겠네요.


"조벅은 왜 왔어요?"

"환승 때문에요"

"조벅 여행은 안 할 거예요?"

"위험하대서요"

"여기가 얼마나 멋있는데요!"


공항 출구에서 숙소 버스를 기다리는데 택시기사님이 말을 걸어왔어요.

본인이 가이드라며 안전한 여행을 보장한다 약속하셨죠.

어디 어디는 꼭 가봐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셔서 솔깃은 했는데요,

그래도 도시에 대한 흥미가 원천 차단된 상태라 호기심은 더 불어나지 않았어요.


이불 밖은 위험해를 이겨내고

이불 밖을 나섰는데

공항 밖은 위험해는 받아들여

공항 밖은 못나갔죠.


혹시 그때 그 아저씨와 구경에 나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호갱이 되었을까요, 아님

또 하나의 미지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당시 저는 전자에 베팅했던 건데

후자에 대한 아쉬움이 왜 없겠어요.

가보지 않은 길은 늘 장밋빛 향기를 풍기는 거라며 위로하고 넘어가는거죠, 뭐.


위험과 모험과 안전과 성취.

절대 가벼울 수가 없는 그 선택의 갈림.


제가 조벅공항만 왔다갔다하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누린 건 하나 있어요.

바로, 넬슨 만델라의 환영입니다.

게이트가 열리면 멀찍이 떨어진 정면에서 만델라가 손들어 반겨주시거든요.

비록 동상이지만 그의 환한 표정은

외딴 사막에 불시착한 어린 왕자 마냥 요리조리 두리번거리며 낯설어하는 제게

충분히 뜨거운 인사였어요.


잘왔어.

어서와.

너의 새로운 조각을 찾으러 떠나왔구나.


제멋대로 붙여본 해석이지만

저는 그렇게 느끼며 즐거웠어요.

이전과 이후의 여정 사이 아주 잠깐만 여기에 들른 거지만

그의 환대에 괜시리 힘이 나던걸요?


저도 세상에게 오늘 하루 손짓 한 번, 웃음 한 번 더 지어주어야겠어요.

나의 사소한 움직임이 누군가의 발걸음에 부스터가 되어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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