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밥심은 안녕하신가요?

보츠와나 급식 이야기

by 다온

보츠와나 정부의 방침에 따라 2학기부터 초등학교 급식이 1회에서 2회로 늘었다. 점심만 주다가 아침까지 주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아침 식사를 조회 후에, 점심 식사를 12시쯤 하는데 시간은 자주 변동되고 물이 없거나 재료가 공급되지 않아 한 끼만 주기도 했다. 급식실에 전교생을 동시에 수용할 수 없어 저학년부터 차례로 식사를 하고 6, 7학년은 교실로 가져가 먹기도 했다. 학교에 있는 식기라고는 스테인리스 용기뿐이라 학생들은 집에서 자신의 컵과 스푼을 챙겨 와야 하는데, 안 가져와서 손으로 밥을 먹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우리나라와 보츠와나의 식생활은 공통점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산과 들, 바다에서 나는 다양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음식의 종류가 무궁무진하고 사람들은 먹을 것에 대해 수많은 선택권을 가지며, 이제는 음식이 단지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오감으로 즐기는 대상이 되었지만 보츠와나는 식문화가 매우 단조롭고, 아직은 음식이 음미보다는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보츠와나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옥수수, 콩, 소고기, 닭고기 정도이고 나머지는 전량 남아공에서 수입을 하는데 감자, 당근, 비트(Beetroot), 양파, 버터넛(Butternut), 양배추, 바나나, 밀가루 등이 주품목이고, 사람들은 이렇게 한정된 식재료의 범위 내에서 평생 밥상을 차려왔다.

2019.4.1. 남아공에서 파업이 일어나서 보츠와나로 식재료가 못 들어왔던 기간에 마트에 붙어있던 안내문

당연히 학교 급식 메뉴도 매우 간단한 구성으로 반복되었다. 교육부에서 온 공문에 따르면 아침 메뉴로 주 3회(월, 수, 금요일)는 우유 넣은 루이보스티, 빵, 삶은 달걀 1개를, 주 2회(화, 목요일)는 옥수수죽(Maize Meal Soft Poridge), 우유, 사과 1개를 제공하는데 이 식단은 일 년 내내 적용되고 점심 메뉴도 이와 거의 비슷했다. 이 중 특히 빵에 있어서 우리 학교의 성의가 느껴졌다. 마트에서 파는 빵은 가격이 싸기 때문에 으레 그것을 제공하겠거니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매일 제빵사 두 명이 학교로 와서 밀가루 반죽부터 화덕에 구워내는 것까지 전 과정을 핸드메이드로 작업했다. 제빵사들은 '내가 만든 빵은 Fresh 하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학교의 화덕이 작기 때문에 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450여 개를 만드는데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나는 가끔씩 구경하러 가서 어떻게 베이킹을 하는지 구경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트랜스지방과의 전쟁으로 주방에서 거의 사라진 마가린이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버터는 비싸고 마트에는 천 원 이하의 마가린이 다양하게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선택이 후자가 되는 게 당연하겠지만 내가 '트랜스지방'얘기를 꺼냈을 때 아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평소에 식품 원재료를 꼼꼼히 살피는 편인데 실제로 고급 마트에 파는 빵과 특정 과자 브랜드 빼고는 마트에 파는 빵과 과자 거의 전부에 마가린이 들어있었다.


반면 내가 최근까지 먹어온 한국의 초등학교 급식은 밥, 국, 김치를 기본으로 최소 두세 가지를 더 곁들여 메뉴를 구성하고, 한 달 식단표에는 김치 외에 반복되는 반찬이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영양은 물론, 사람들의 다양한 입맛까지 고려하여 식단을 계속 변형시키는 게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요구사항과 잔반은 줄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지만 말이다. 만약 우리 급식이 한 끼라도 보츠와나처럼 같은 메뉴가 반복되거나 영양 구성이 치우치거나 재료가 건강하지 않다 의심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빗발치는 민원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학교 급식은 규정상 학생들에게만 제공된다고 했다. 그래도 학교 주방에서 식사를 하는 교직원들이 많았다. 나는 항상 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고, 한 번도 학교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사실 음식이 입에 안 맞아 누가 먹으라고 친절을 베풀어주면 난처할 것 같았는데, 나에게 아무도 먹어보라고 권하는 이가 없어 결과적으로는 마음이 편했다. 어떤 교민께서 '우리는 뭘 먹고 있을 때 누가 오면 예의상으로라도 음식을 권하지만, 보츠와나는 나누는 문화가 아니라 내 것은 나만 먹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 생생한 문화 차이를 직접 겪는 게 흥미로웠다. 내가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고 이 곳 문화를 몰랐다면 솔직히 먹는 것 때문에 서운했을 것 같다.


우리 학교 젊은 직원이 “너는 뭐를 먹고살아? 나는 한국 음식이 뭔지 모르지만 왠지 못 먹을 것 같아"라며 본인은 자기 나라 음식이 좋다고 한 적이 있는데, '뭔지도 모르면서 왜 싫다고 하나, 우리나라를 무시하는 건가?' 싶어 처음엔 안 좋게 들렸다. 그런데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서 그런 것이었다. 전혀 모르면 시작할 엄두를 못 내는 상황 말이다. 나도 해외에 가면 현지 음식을 선뜻 시도하지 않고 익숙한 것을 선택하게 되는데 내가 배탈이 잘 나는 탓도 있고, 먹는 것에 있어서는 굳이 도전해보려는 마음이 없어서다. 그래서 그 직원의 마음이 이해는 됐다. 욕심 같아서는 그 친구가 한국 음식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뭔가 기여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별 영양가 없는 말들만 늘어놓았던 것 같다.


나는 학기 초에 학생들과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는데 이때 발표 항목에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있었고 피자와 치킨이 1위였다. 이 두 가지는 마트에서도 항상 완조리 식품을 팔고 있고 우리 동네에도 KFC, Chicken Licken, Debonairs Pizza 같은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콩, 옥수수, 쌀을 꼽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아마 평소에 집에서 주식인 그 곡식들만 먹고 다른 음식들은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 경우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보츠와나에서 기본 곡물은 값이 싸고 별식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음식 선호도는 어쩌면 가정의 경제사정과도 관련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자신이 주로 먹는 것이나 주변에서 봤던 것만 아는 이 학생들에게 다채로운 한국의 음식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게 막연히 한국 음식에 대해 묻던 그 젊은 직원에게는 알려주지 못했었지만 나와 수업 시간에 꾸준히 만나는 이 학생들과는 래포도 더 형성되어 있고 시간도 충분히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호기심이 더 열려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 순위를 토대로 불고기, 갈비찜, 잡채, 비빔밥, 파전, 김밥 등의 사진과 동영상을 모아 자료를 만들었고, 한 시간 수업으로 한국 음식을 소개했다. 화면을 꽉 채운 화려한 색감의 한국의 먹거리들은 보츠와나 학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 반응은 뜨거웠다. 실제 어느 한 가지라도 맛을 보게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지는 못했다.


보츠와나에는 오전에 티타임 문화가 있는데 우리 학교는 10시 반에서 11시까지였다. 직원들은 보통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출근을 했고, 브런치쯤 되는 그 시간에 군것질로 배를 채웠다. 학교 앞 노점에서 파는 과자 한 줌이나 빵 한 두 조각으로 근무 시간을 내내 버티는 직원들이 많았는데, 영양은 둘째치고 과연 배고픔이 해결될지 궁금했다. 사람들은 다들 '습관이 돼서 괜찮고, 퇴근하고 집에 가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집에서 어떤 식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중 그 저녁 한 끼가 제대로 먹는 유일한 끼니가 될 것이었다. 사람은 일단 적응하면 적응한 대로 살아지긴 하지만, 인간에게 의식주 중 '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는 걸 생각할 때 왠지 그들의 삶이 더 고단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에 유난히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하는데, 아무리 의역을 잘한다고 해도 외국인은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님들은 항상 우리가 밥을 먹었는지 확인하시고,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인사말의 레파토리가 되었으며, 돈 버는 이유를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표현한다. 여기엔 말로 설명하긴 힘든 한국인만의 정서가 있다. 나를 위해 차려진 밥상은 내 신체를 채우고 마음을 위로한다. 나는 보츠와나에서 매일 매끼 홀로 식사를 했지만 비교적 유쾌했고, 덕분에 하루를 잘 버텨나갔던 것 같다. 구색은 달라도 자기만의 밥상 앞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풍성한 시간을 충분히 누리는 삶이길 바란다.


북적북적 급식실. 밥 먹는 시간은 행복해요
교실로 음식을 가져가는 7학년과 급식실에서 먹는 유치원반
출장 제빵사가 매일 우리 학교로 찾아와 빵을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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