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기억해줘요
수도에 파견되신 선생님 댁에는 30대 초반의 짐바브웨 출신 입주 가정부가 있었다. 엄밀히 말해 토요일 점심쯤 본인 집에 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주6일 근무에, 한 달 월급은 한화로 20만 원 이하이고, 이 집 가족들과 사이가 좋아 3년 째 같이 사는 중이었다. 그녀는 빨래, 청소, 요리 등 모든 집안일을 했다. 집안일을 도와주러 누가 온다한들 청소는 빗자루와 청소기, 빨래는 세탁기가 있으므로 결과에 별 차이가 없겠지만, 요리만큼은 그녀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 것 같았다. 그만큼 요리 솜씨가 좋았다. 선생님이 한식을 선호하셔서 이 친구에게 유튜브 한식채널을 알려줬는데, 그녀는 자신이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한국 요리를 그 영상만 보고도 맛있게 잘 만들었다. 레시피대로만 하면 누구나 요리에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아비(Abbigal)를 통해 알았다. 우리의 찬사에 자신감이 생겼는지, 본인도 나중에 돈만 있다면 한식당을 차리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참기름 맛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외 한식의 맛은 안 좋아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들어 놓고도 전혀 맛을 보지 않았다. 어차피 먹어봐도 무엇이 ‘맞는’ 간인지 모르니 그럴 만도 했다. 이 집에 자주 오면서 나도 그녀와 친분이 생겼는데, 식사준비를 할 때면 나도 종종 주방에 따라 들어가 옆에서 유심히 지켜봤다. 유튜브 영상보다는 실물로 보는 게 더 쉽고, 복잡하지 않으면 집에 가서 바로 실습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이 집의 인기 메뉴인 깐풍기를 만들길래 확실히 배워보고 싶어서 몇 가지 질문을 했더니 아비는 그날따라 ‘왜 자꾸 체크를 하냐’며 생각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웃으며 말했어도 싫은 티는 났다.
- 체크한 거 아니고 이 요리 배우고 싶어서 물어본 거야.
/ 이거 한국 요리잖아.
- 중국 요리야.
/ 한국이랑 중국이랑 다 똑같은 거 아니야?
- 한중일은 다 달라. 각자 고유한 문화가 있어!
한국 요리라서 다 알고 있을 텐데 내가 일부러 자신을 점검하기 위해 ‘설탕은 몇 숟가락 넣냐, 물과 간장의 비율은 어떻게 되냐’ 등을 물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중일은 주변국이니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비슷한 점들이 있지만 언어, 음식, 생활상이 다 다르다'라고 그동안 여러 번 말해줬는데 왜 아직도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걸까. 솔직히 그런 답답함보다는, 시어머니 노릇하는 걸로 오해받아 기분 상한 게 더 컸다. 나는 주방에서 거실로 나와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비의 관념이 이해가 됐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 많은 친인척이 짐바브웨에 있고, 자신은 보츠와나에 있고, 엄마와 동생은 남아공에 있는데 인접국인 이 나라들 사이에 문화적 이질감은 전혀 없었다. 물론 각 나라만의 특징들은 있겠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주의 형태에 차이랄 게 없고, 모두 영어권에다, 사람들은 항상 왓츠앱(WhatsApp)과 페이스북(Facebook)으로 삶의 모든 것들을 실시간으로 공유함으로써 같은 시공간을 살았다. 그런데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들이 원래는 같은 생활권이다가 서구 식민자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국경이 나뉘면서 서로 다른 국가로 편입된 역사가 있고, 여기에 아프리카 시장을 점령한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타국간의 공통분모가 더욱 증가해가는 사회구조까지 더해지니 인접국간의 차이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한국과 주변 아시아 국가들도 이곳과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할 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 짐바브웨 친구만 아시아를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만난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시아인에게 거의 100% ‘니하오’라고 인사를 했다. 중국인들이 아프리카에 많이 살기 때문에 생긴 필연적 결과지만, ‘칭챙총’처럼 비하적으로 많이 쓰이고 만약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 아시아인은 다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거라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이를 좋아할 리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니하오에 대꾸하지 않았고, 나도 점점 그렇게 됐다. 그러나 언어는 뉘앙스가 중요한 바, 인사를 건네는 상대방의 태도를 고려해보면 우리가 그렇게까지 언짢아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내가 만나본 사람들은 니하오가 아시아 각국에서 공통으로 쓰는 인사말인줄 알거나 ‘아시아=차이나’로 알았다. 우리 학교 교사 한 명도 내가 떠나던 날까지 '차이나는 언제 가냐'고 물었는데, '나 코리안이다'라고 일 년 동안 말했어도 머릿속엔 중국 외에 다른 게 없었던 거다.
안면이 있는 교육청 직원과 오랜만에 마주쳤던 날, 그가 매우 친근하게 ‘니하오’라고 하길래 나는 정확한 설명으로 그 미소에 보답하고 싶어졌다.
- 니하오는 중국말이에요. 사람들이 잘 모르고 그렇게 인사하는데, 한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은 그걸 기분 나쁘게(Offensive) 생각해요. 놀리는 투로도 많이 쓰거든요.
/ 미안해요. 몰랐어요. 정말 미안해요.
- 괜찮아요. 이해합니다.
/ 한국말로는 어떻게 인사하나요?
-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 (자세를 따라 하며) 안녕하세요.
- 완벽해요.
/ 고마워요.
이렇게 나는 한국을 알려주었고, 그는 우리를 알게 되었다. 내가 평소처럼 니하오를 무시하고 넘겼다면 한 명의 보츠와나인에게 우리나라를 알릴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주무관청인 Southern District Council에 교장 선생님과 민원을 넣으러 갔을 때도 티타임 후 복귀하던 한 무리의 공무원 중 나에게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니하오'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 제대로 알려준 적이 있다.
- 그건 중국 인사이고 저는 한국인이예요.
/ 일본이요?
- 아니요, 코리아.
/ 북한이요?
- 아니, 남한이요.
/ 서울이요?
- 네.
/ 평양 아니고 서울 맞죠?
- 네. 많이 알고 계시네요.
이 사람은 한국에 대한 지식이 약간 더 있는 상태로 남북한의 수도까지 거론했지만 나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했고, 한국인이라고 했는데도 일본인이냐고 묻고, 한국이라고 하니 북한을 떠올렸다. 나는 싸우쓰 코리아 네임밸류의 현주소에 당도한 듯 했다. 방금 본 흑인이 보츠와나 사람인지 나미비아 사람인지 우리가 절대 구분할 수 없듯, 이들도 아시아인을 출신지별로 구분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비단 보츠와나에서 뿐만 아니라 내가 최근 일년간 아프리카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사람들은 '아시아'하면 무조건 중국, 다음은 일본, 그리고 코리아는 ‘김정은, 삼성, 미사일’의 범위를 넘지 않았다. 내가 코리안임을 밝히는 순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김정은을 아느냐’와 ‘삼성 핸드폰 좀 싸게 사다 달라’였다. 뉴스에서 봤다며 ‘미사일은 어떻게 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보츠와나와 한반도의 외교관계를 보면, 한국과는 1968년에 수교를 맺고 1994년에 첫 국빈방문을 하고 지금까지 협력관계가 확대되어 온 반면, 북한과는 1974년에 수교를 맺고 1976년에 세레체카마 대통령의 국빈방문이 이루어지고 2014년에 북한 인권 문제로 수교를 단절한 상태인데 보츠와나에서 존재감만큼은 아직 대한민국보다 북한이 더 큰 것도 같다. 북한이 만든 동상인 'Three Dikgosi Monument'가 수도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고, 우리 교장선생님도 나에게 한국에 대해 질문하실 때 가끔씩 ‘North Korea에서는 어떻게 하냐’고 물으시는 걸 보면 말이다. 우리가 아프리카를 모르듯, 아프리카도 우리를 모른다. 우리나라가 갈 길이 아직도 멀다. 대한민국이 어디서나 의기양양할 수 있도록 우리 앞으로도 분발하자 대한국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