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용기는없어서사는중, 외전#1]제도는 있었지만, 나에겐 너무 멀었다
'상담은 받으면 좋다'는 말은 흔하다.
하지만 그 상담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멀었다.
내가 처음 알게 된 '서울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은
별다른 비용 없이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신청 방법도 비교적 간단했다.
인터넷으로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내가 상담받고 싶은 위치를 1순위부터 적을 수 있었고,
심리상담소를 내가 직접 찾을 필요 없이
선호 지역(예: 마포구, 강남구 등)에 따라 배정해 주는 방식이었다.
단점이 있다면, 상담사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어떤 상담사와 연결될지는 알 수 없었고,
상담 퀄리티는 운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만으로도 벅찼기에,
이 제도는 충분히 고마웠다.
다만 '서울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은 기본적으로 6회기까지만 지원되었고,
필요한 경우 10회기 연장이 가능했지만
그 이후엔 추가적인 지원을 받기 어려웠다.
상담이 끝난 후,
계속 상담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전국민마음투자지원사업'이라는 또 다른 상담 제도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이 제도는 '차등 지원' 방식이었다.
상담사 유형(1급, 2급)에 따라 가격이 달랐고,
본인의 소득 기준에 따라 본인부담금도 0%부터 30%까지 달라졌다.
게다가 신청을 위해선 몇 가지 서류 조건이 있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나 Wee센터 등에서 발급하는 의뢰서
정신의료기관의 소견서
국가건강검진 정신건강검사(PHQ-9) 결과 중간 이상 점수(10점 이상)
내 경우, 정신과를 방문한 적도 없었고
그 당시에는 국가건강검진 대상자도 아니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직접 찾아가는 것이었다.
거주지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갔어야 했는데
그곳의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다.(※ 사전 예약 필수)
'이 시간에 어떻게 가지…'
상담을 받고 싶었던 나는, 그 제도 앞에서 또다시 멈췄다.
마음이 아픈 건 나인데,
왜 내가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설명해야 할까.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이 기관을 방문하기 위해선 연차나 반차를 반드시 써야 했다.
'마음이 아프면 상담을 받으라'고는 하지만,
정작 그 상담을 받기 위해선 시간을 내야 했고,
그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사람은 그냥... 참아야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 제도가 닿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걸.
학생이든, 일하는 사람이든, 여유가 없는 삶일수록 문턱은 더 높아졌다.
아픈 사람은 상담을 받기 위해서도
시간을 내고, 서류를 준비하고, 자리를 찾아가야만 했다.
단지 상담을 받고 싶었을 뿐인데,
그 마음조차 절차와 자격 조건 앞에서 자꾸만 작아졌다.
내가 받고 싶었던 건
거창한 치료나 처방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겨우 버티고 있는 내 마음을
잠깐이라도 놓아둘 수 있는 시간.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을 위해서도
나는 연차 계획을 짜고, 상사에게 보고하고,
기관 방문 전후로 업무를 조정해야 했다.
서울서울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이
"그때의 나"를 간신히 붙잡아줬던 자리라면,
전국민마음투자지원사업은
"지금의 나"가 겨우 도달한 또 다른 문턱이었다.
둘 다 분명, 고마운 제도였다.
하지만 분명히 느꼈다.
제도가 있다고 해서, 모두에게 닿는 건 아니라는 걸.
조금만 타이밍이 달랐더라면,
조금만 용기가 늦었더라면,
조금만 상황이 달랐더라면,
나는 이 문을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상담을 받으면 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 상담을 받기 위해서도,
우리는 여전히 많은 걸 증명해야 한다.
증상, 소득, 진단, 시간, 그리고 용기까지.
어쩌면 이 글은,
누군가에겐 너무 당연한 제도의 안내서일지도 모르고
누군가에겐 처음 듣는 생소한 정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이 모든 과정이
"아프다고 말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간들"의 기록이다.
제도는 고마웠다.
하지만 그 안에 '나'는 있는가를 묻고 싶었다.
지금도 상담을 고민하며
시간을 쪼개고, 마음을 다잡는 누군가에게
이 기록이 작게나마 닿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