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승언 Sep 08. 2019

공부가 뭐니? 명예와 존엄을 생각하다

최근에 "공부가 뭐니?"라는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모 탤런트 부부는 세 자녀들을 일주일에 34개의 학원을 다니며 공부시키고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분명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릴 때부터 자녀들의 능력과 스펙을 키우기 위해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왜 나는 자유롭지 못할까? 대안이 없어서,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 막연히 그 길을 따라가고 있을지 모른다.


요즘 "돼지엄마"라는 신조어가 있다고 한다. 이 단어는 흔히 예상하는 바와 달리, 살이 찌거나 욕심을 많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학원가에서 높은 정보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엄마를 뜻한다. 새끼돼지들을 이리저리 끌고다니는 모습과 비슷하다하여 이런 속어가 생겼다고 한다. 사교육에 대한 정보력이 그만큼 자녀교육에 중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고급 정보는 동료 학부모는 물론 가까운 사이에도 공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일 것이다.

 
영어와는 담쌓은지 오래인 내가 어울리지 않게 영어도서관 대표자로 있다. 지역사회를 위해 무료로 운영되는 이곳에는 자원봉사하는 학생들이 많이 방문한다. 개인적으로 자원봉사사이트를 통해 신청하는 사람들도 있고, 단체로 와서 봉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 학생들 중에는 한영외고 친구들이 있는데, 매주 와서 영자신문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벌써 몇 년 째 가르치고 있는데, 선배들이 졸업하면 후배들이 물려받아 계속해서 섬기고 있다.


그런데 가끔 이 학생들의 수고와 섬김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높은 점수를 받는 것과 다른 사람이 보다 높은 점수를 받도록 돕는 것, 둘 중 어느 것의 가치가 더 클까? 대학선배 중 한 명이 여학생회 회장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느끼지 않았는데, 유학을 갈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외국의 경우에서는 개인의 능력 못지 않게, 개인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력 끼쳤느냐를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우리 사회는 "명예"를 소중히 여겼다. 명예란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들을 위해 자신의 학업을 희생하는 형이, 가출한 친구를 돕기 위해 방과 후에 찾아 나서던 학생이, 직업윤리를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던 사람들이 존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존엄(자존감)"이 중시되고 있다. 개인의 행복과 만족이 중요시 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해진 것이다. 이를 위한 끊임없이 개인의 능력을 키우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럼 그 결과는 어떨까? 계속되는 비교와 경쟁 가운데 정말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고 행복을 누리고 있을까? 누군가는 패배해야 하고 항상 승리할 수 없는 제로섬 게임에서 과연 존재가치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도서관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도서관에 봉사하러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봉사점수가 필요해서 올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와서 얻는 건 단순한 봉사점수 이상임을 종종 느낀다. 왜냐하면 봉사점수가 없어도 다시 와서 봉사하겠다는 친구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렇게 바라는 자신의 존재가치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어쩌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귀한 시간과 기회, 에너지를 들여서 봉사의 장을 다시 찾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존엄"도 "명예" 가운데 찾을 수 있는 것을 아닐까? 그럴 때 제로섬 게임에서 찾을 수없는 모두의 가치를 발견할 순 있지 않알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좋은 형, 좋은 동생, 좋은 친구,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 너무 이상할까?


작가의 이전글 보수는 무능해서 진보는 부패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