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승언 Sep 08. 2019

미술관 앞 어떤 사진이 어울릴까

목발에 의지하지 않으면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장애와 세 차례의 암 투병 속에서도 고난에 굴하지 않고 따뜻한 글로 희망을 전했던 수필가이자 영문학자인 장영희 교수라는 분이 있다. 그녀가 한번은 자신의 여동생과 조카들과 함께 외국에 있는 어느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녀는 미술관을 둘러본 후, 방문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점잖게 생긴 중년 남자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그 남성은 자신이 가진 카메라와 같은 모델이라면서 쾌히 승낙했다. "김치, 예, 완벽합니다. 한 번 만 더, 예. 한 번만 더 찍겠습니다." 장 교수는 일행은 아주 능숙하게 세 차례에 걸쳐 촬영을 해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헤어졌다.


미술관을 다녀 온 며칠 후, 필름을 현상해 본 장 교수는 너무나 깜짝 놀랐다. 첫 번째 사진은 가족 모두의 머리를 잘라 놓았고, 두 번째 것은 동생의 발만 크게 확대해 놓았고, 세 번째 것은 가슴만 확대해 놓은 괴기한 사진이었던 것이다. 그 사진들을 보고 장교수는 사진 찍는 사람의 인간성에 대해 회의와 불쾌감으로 열이 뻗쳤다고 한다.


그런데 옆에서 열심히 사진을 함께 들여다보던 장교수의 초등학교 1학년 조카 건우라는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와, 이모! 이 사진들을 짱 멋있다. 그때 그 미술관에서 본 추상화 같다. 우리가 미술관 앞에서 찍으니까 이렇게 찍어주신 모양이지? 완전 예술품이다." 조카의 말에 장 교수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불쾌하게 한 사진들이 전위 예술품으로, 아니 샤갈의 그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술관 앞에서는 어떤 사진이 어울릴까? 어떤 배경에서나 동일한 포즈와 표정으로 찍은 사진보다는, 어쩌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작품처럼 찍은 사진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이런 점에서 중년 남자는 장교수에게 멋진 사진을 찍어준 것이다. 장교수는 그 날의 일을 회상하며 관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최근에 군생활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였던 적이 있었다.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그리고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가 금기시되던 때도 있었는데, 군대 이야기가 이렇게 인기일 줄은 예상 밖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즐겨볼까? 고생스러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대에서 휴가 나온 군인끼리 만나면 가장 많이 자랑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부대가 얼마나 편한가라는 점이다. 속된 말로 자신의 부대가 얼마나 “빠졌는지”를 자랑한다. 재미난 것은 막상 군대를 제대하면 자신의 부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신이 고생했는지를 자랑한다는 사실이다. 편한 군생활을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다닐 때는 여행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를 자랑한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나면, 얼마나 어렵고 위험이 많았는지를 자랑하게 된다. 편안한 호텔에 앉아 여행한 사람보다, 험한 산을 오르며 온갖 고생을 한 사람이 이야기할 것이 더 많은 것이다. 맥스 루케이도의 말처럼, “모험 없는 여행처럼 무의미한 것도 없을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꽃길만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 길은 아닐 수 있다. 때로는 흙길이 더욱 빛나고 의미 깊은 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흙길에서 만난 땀과 눈물이 우리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관점의 전환이 아닐까? 익숙한 미술관 앞 사진이 아니라 다른 각도의 사진을 찍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
_  프리드리히 니체



작가의 이전글 공부가 뭐니? 명예와 존엄을 생각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