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승언 Sep 11. 2019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너는 방법

인생을 종종 산을 오르는 일에 비유하곤 한다. 산은 올라야 할 정상이 분명하고, 위험한 골짜기도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생은 어떨까?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내 삶이 늘 예측불허했던 것 같다. 과거에 확실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희미해지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불확실성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하라 사막을 횡단했던 경험을 가지고 쓴 스티브 도나휴의 책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 눈길을 끌었다. 사막은 끝을 알 수 없고 시시각각 경계와 지형이 변하고 더위와 추위라는 상반된 위험이 존재한다. 어쩌면 인생이란 사막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끝도 보이지 않고 길을 잃기도 하고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하고 신기루를 쫓기도 한다. 그럼 어떻게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널 수 있을까.


1. 지도가 아니라 나침반을 따라가라


사막에서는 지도나 여행안내서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모래땅의 모양은 쉴새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설령 모래언덕에 이름을 붙인다고 해도 그 이름을 인쇄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미 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사막에서는 지도보다는 나침반을 따라가는 것이 휠씬 현명한 일이다. 사막에서 조난 당한 사람들은 길을 찾기 위해 하루종일 걷는다는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같은 자리만을 반복해서 걷게 되는데, 이를 "윤형방황"이라고 부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바쁘게 살다가도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막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방향 감각이라고 한다. 단순히 목표나 목적지를 보여주는 지도가 아니라, 자신을 안내해 줄 내부의 나침반이 필요한 것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주변의 환경 속에서도 올바른 방향을 지시해줄 자신만의 나침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떨까. 주변의 소리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나침반을 있을까.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할까?


2.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


사막을 여행할 때 오아시스를 만나면 쉬어야 한다. 쉬면서 기력을 회복하기도 하고, 여정을 되돌아보고 생각도 하고, 같은 여행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는 것이다. 왜일까? 사막은 늘 변하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목적지가 생각보다 멀 수도 있고 길이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쉼에 익숙하지 않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젓 먹던 힘까지 다해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목표에 다다르면 충분히 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지 않는다면, 사막은 늘 우리에게 대가를 요구한다. 쉬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느끼지는 순간조차도, 오아시스를 만나면 쉬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여정을 돌아보고,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놓치지 마라.


3.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프슈프슈"는 아주 부드러운 가루 모래로 사막의 운전자에게는 악몽과 같은 존재다. 차가 모래에 갇혔을 때 가속페달을 밟으면 속도를 높이면 차는 더욱더 모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사막에서 고립되는 이유 중 하나는 단단한 땅에서 운전할 때 필요한 기술이 부드러운 모래 위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과거의 성공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막의 모래에서 차가 빠져 나오는 방법은 타이어에 바람을 빼는 것이다. 공기를 빼면 타이어가 평평해져서 바퀴 표면이 넓어지기 때문에 모래 구덩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인생의 사막에서 모래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작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겸허함이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할 때 오히려 쉽게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런데 공기를 빼는 일이 쉽지가 않다. 왜일까? 오해 때문이다. 자아에서 공기를 빼는 것은 결코 자존심을 무너뜨리거나 스스로 엄해진다거나 완전한 패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약점까지 포함하여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갖출 때, 더 높이 일어설 수 있게 된다.


4. 혼자서, 함께 여행하기


사막에서 여행하는 방법 중 하나는 “혼자서, 그리고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사막을 여행하다가 함께 여행하던 차량 중 한 대가 고장나면, 모두가 그 차가 수리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차량별로 사고가 나면 각자 보수를 하고 멀쩡한 차는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선두에 선 차량은 태양이 지기 한 시간 전에 자리를 잡고 캠프를 친 후 뒤에 오는 차량을 기다린다. 만약 심각하게 차가 부서지거나 캠프에 도착하지 못하는 차가 있으면, 그 다음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혼자서, 함께 여행하기’는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사막을 여행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며, 변화의 사막에서도 효력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혼자 여행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둘 중의 하나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생 역시 "함께"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혼자"의 시간도 필요한 것이다. "함께" 그리고 "혼자" 여행할 줄 알 때 우리는 더 멀리 갈 수 있다.


5.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음 물러나기


사막의 밤은 춥고 어둡다. 캠프파이어는 어둠과 추위로부터 피난처를 제공한다. 그런데 캠프파이어의 불을 끄고 자리를 옮겨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캠프파이어로부터 벗어나면 예상하지 못했거나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꺼져가는 불을 의지하다 옮길 시간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우리는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에 머물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불편하더라도 이미 적응된 상황에 변화를 주기 싫어하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고통스러운 현실에 안주하는 것에 익숙해 있는 것이다. 왜일까? 현실은 고통스러울지라도 최소한 예상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현실 보다 사막의 어둠이 더 무서운 것이다. 

인생의 사막에 대비하여 완벽하게 준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익숙한 캠프파이어에서 벗어나 사막의 불확실성을 담대하게 맞이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캠프파이어를 벗어날 때 또다시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캠프파이어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익숙하고 안전한 것들로부터 조금 물러날 줄 알 때,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 행동할 수 있게 된다.


6.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


사막은 뚜렷한 경계선이 없다. 그런데 여행객들은 허상의 경계선을 그려놓고, 경계선을 넘지 않으려고 한다. 그 결과 경계선 너머로 나아가지 못하고, 익숙한 사막에 머무르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각자 마음의 선을 갖고 살아간다. 자신에 대해, 다른 사람에 대해, 일에 대해 나름의 선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선은 우리의 삶을 안전하고 평온하게 만들고, 우리의 삶 가운데 확신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제한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선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때로는 신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확신과 신념에 도전해 볼 필요가 있다. 잘못된 신념을 넘어설 줄 알 때, 우리는 중요한 전환점을 경험하고 진실을 마주하게 되며 내적으로 성장과 치유를 경험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하나님은 왜 심판을 좋아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