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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언 Sep 15. 2019

작은 도서관 설립이야기(1) 시작

 

영어와 담 쌓은 지 오래인 내가 어울리지 않게 영어도서관의 대표자로 있다. 지역주민을 위해 무료로 운영되고 있는 영어도서관은 시작한 지 어느덧 6년이 지났다. 지금은 월평균 520명 가량의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6천여권의 도서와 1천여개의 시청각자료를 구비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 느꼈던 막막함에 비하면 잘 자리잡은 것 같다.


왜 도서관인가?


최근에 왕좌의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칠왕국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가문간의 대립과 다툼을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에는 거대한 얼음장벽과 이 장벽을 지키는 야경단이 등장한다. 이들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대마왕과 죽은 자들로부터 장벽을 지키고 있었는데, 대마왕은 장벽을 뚫고 내려와 인류 문명을 없애고자 한다. 특히 인간의 기억을 지우고자 한다.


왜 하필이면 기억일까? 기억은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근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을 친구라고 부르며, 친구를 만나면 공유된 기억이 있기에 즐겁다. 그만큼 기억은 소중하며, 어쩌면 나라는 존재는 이런 기억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며, 드라마의 이야기처럼 기억을 잊혀질 때 나라는 존재를 사라지는 것일지 모른다. 인류가 끊임없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도, 책을 기록하고 읽히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 많이 듣던 구호 중 하나는 "잘 살아보세"였다. 배고팠던 시절이었기에,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던 것 같다. 학창시절 교복과 두발 자율화가 시행되었다. 개성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먹고사는 것 외 문화적 요구가 중요해졌다. 그 시절 교회에서 열리는 "문학의 밤"은 이런 갈증을 해소해주는 문화적 탈출구와 같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거에 비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풍요로워졌다. 다만 풍요만큼이나 얼마나 깊이가 있는지, 우리의 삶을 부요하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도서관은 어떤 곳일까? 도서관 하면 책을 읽는 곳으로 생각하기 쉽다. 물론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책을 읽는 것이고, 책을 통해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인생을 배운다. 다만 도서관은 함께 책을 읽는 곳이기도 하다. 다르게 표현하면 만남을 갖고 생각을 나누고 삶을 공유하는 곳이다. 우리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 중에는 스스로 책을 읽으러 오기도 하지만, 형들이 읽어주는 책을 듣기 위해 오는 친구들도 많다. 이들은 책 이전에 사람을 만나고, 만남이 좋아 오는 것이다. 이렇게 책을 함께 읽는 공간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가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으로 도서관을 시작하게 되었다.


왜 영어도서관인가?


학창시절 집에 낯선 기계 하나가 생겼다. 비디오 플레이어였다. 넉넉한 가정형편도 아니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편도 아닌데, 갑자기 왜? 이유는 간단했다. 교육방송(EBS)을 녹화해서 보여주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후에 컴퓨터를 구입한 이유도 동일했다. 이렇게 교육을 위해 우리 집 가전제품은 늘어갔다. 물론 부모님들의 기대와는 달리 학습용으로 많이 활용되지는 않았다.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훈은 역사를 통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이라는 말처럼, 나 역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전집류의 책을 구입했다. 물론 거금을 들였지만, 책장만 차지하며 전시용이 되고 말았다. 영어책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잘하려면 많이 듣고 읽어야 하는데, 수준별로 책을 계속해서 구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치 성장기 아이의 운동화처럼, 어렵게 구입한 책들도 금새 골동품이 되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시작하면서 어떤 도서관을 할까 고민이었다. 영어책을 구입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그리고 영어교육현장이 빈부의 격차가 크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어도서관을 하면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조사


탁구를 배울 때였다. 선생님에게 어떠냐고 물었다. 선생님이 "나쁜 습관이 없어서 좋다."고 말했다. 어렵게 말씀하셨지만, 탁구를 전혀 못 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실제로 잘못된 자세를 고치는 것보다 처음부터 가르치는 것이 쉽다고 한다. 도서관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도서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먼저 여러 도서관들을 조사했다.


도서관에 대해 조사하면서 느낀 점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접근이 용이한 위치에 좋은 시설과 많은 장서를 구비한 도서관들도 텅빈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멀고 좁고 열악한 조건의 도서관들이 의외로 이용자수도 많고 운영이 잘 되는 경우도 많았다. 중요한 것은 시설이나 책이 아니라, 이용자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만나느냐에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이 사실이 도서관을 세우고 운영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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