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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도우시는 하나님-열왕기하 14장 17~29절

매일성경 큐티, 9월 28일

by 양승언

9월 28일(토)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하나님

열왕기하 14장 17~29절


유다 왕 아마샤의 마지막 행적 17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간을 생존하였더라 18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9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한 고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0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니라 21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를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 그 때에 그의 나이가 십육 세라 22아마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복귀시켰더라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의 통치 23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간 다스렸으며 24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5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26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27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28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과 싸운 업적과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9여로보암이 그의 조상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묵상하기

1.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는 왕위에 올라 41년간 다스렸다. 그의 통치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23~24절)


2. 여로보암 2세 때 이스라엘 영토가 회복되는 은혜를 누렸다. 이렇게 영토를 회복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25~26절)


3. 이스라엘의 고통과 그들을 도울 자가 없었음을 하나님이 보셨다는 사실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 외로움을 아신다. 당신은 이 사실을 믿는가? 하나님 앞에 속 마음을 내려놓고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길잡이

남 유다의 아마샤 왕은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교만에 빠져 북이스라엘과 무의미한 전쟁을 펼치게 되었다. 그 결과 처참히 패배하였고, 역사상 처음으로 남 유다 백성들이 북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 가게 되었다. 아마샤의 말년은 매우 비참했다.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그는 급히 라기스로 도망갔다. 하지만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라기스까지 쫓아가 그를 살해하게 되었다. 교만이 낳은 비극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아마샤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아사랴가 16살의 나이로 왕이 되었다(17~22절).

열왕기서는 다시 시선을 북이스라엘로 돌린다. 여로보암 2세는 북 이스라엘 왕들 중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왕이었다. 그는 무려 41년 동안 다스렸다. 그는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처럼 악한 왕이었다(여로보암 1세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숭배하도록 하였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는 동안 이스라엘을 축복하셨다는 점이다. 선지자 요나를 통해 예언하신 것처럼 이스라엘의 국경을 하맛 어귀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시켜 주셨다. 그럼 왜 이스라엘을 축복하셨는가? 그 이유는 여로보암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고 있던 고통과 이들을 도울 자가 없었음을 보셨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스라엘의 유일한 소망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뿐이었다(23~29절).

비록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 있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아픔을 보시고 돕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 외로움을 아시고 돕기 원하시는 분임을 믿는가?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도

우리의 아픔과 외로움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날마다 나가 기도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삶 속으로

.전라남도 해남의 어느 섬에 한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은 책읽기를 좋아하고 공부도 잘했지만, 너무 가난하여 중학교에 갈 수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따라 지게도 지고 풀도 베며 2년이란 시간을 보내지만, 해가 갈수록 배우고 싶은 열정은 억누를 길이 없었다.

중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섬에는 중학교가 없었고 육지로 나가야 하는데 가정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세 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은 멀리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소년은 열다섯 살이 되던 여름성경학교에서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 소년은 하나님께 편지를 썼다. "하나님, 저는 중학교에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집이 가난해 갈 수가 없습니다. 저를 중학교에 보내주십시오. 굶어도 좋고 머슴살이를 해도 좋습니다. 제발 중학교에 보내주십시오."

자신의 주소는 적었지만 하나님의 주소는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봉투에 큰 글씨로 "하나님 전상서"라 적어 우체통에 넣었다. 우체부 아저씨는 이 편지를 보고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이 편지를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당시 해남읍교회 목사님께 전해주었다.

목사님은 소년을 찾아 교회 장학금으로 학교에 보내주었다. 중, 고등학교를 우등생으로 마친 소년은 1962년 한국신학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 뒤 스위스 바젤 대학교로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한국 신학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지난 2000년에 총장에 취임하게 되었는데, 이 소년이 바로 한국 신학계의 석학 오영석 박사다. 그 날에 쓴 편지 한통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그는 고백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에게 손편지를 쓴다고 당장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지 모른다. 그래서 이 소년의 이야기는 우연이고 나와 무관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그날에 이 소년이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그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도우심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이다. 세상이 보기엔 어리석어 보일지 몰라도,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디딜 줄 아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돕길 원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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