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큐티, 11월 25일
11월 25일(월)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세아 6장 1~11절
선지자의 호소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이 심판을 선언하시다 4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제사장의 악행을 고발하시다 7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8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9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이스라엘과 유다의 악행을 고발하시다 10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11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묵상하기
1.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가지를 호소한다. 호세아가 호소한 내용은 무엇인가? (1~3절)
2.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 (4~6절)
3. 여호와를 알자 힘써 알자는 호세아의 호소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을 힘써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길잡이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 돌아가자”고 눈물 어린 호소를 시작한다. 하나님께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치유하고 회복해 주실 것이라는 점을 세 가지 예로 설명한다. 첫째 그가 찢었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다. 둘째 그가 치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실 것이다. 셋째 이틀 뒤에 우리를 살리시고 사흘째 일으켜 세우실 것이다. 특히 근동지역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3일 후에 영혼이 완전히 떠난다고 생각했기에, 3일째 회복된다는 것은 완전히 죽은 자를 살린다는 뜻이다. 선지자의 두 번째 호소는 “여호와를 알자.”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게 될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찾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두 개의 이미지로 제시한다. 첫째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여명이 오듯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찾아오실 것이다. 둘째 해마다 가나안 땅을 적시는 가을 비(이른 비)와 봄 비(늦은 비)처럼 이스라엘에게 오셔서 그들을 풍성하게 하실 것이다(1~3절).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향해 탄식하신다. 하나님은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런데 그들은 그 언약을 마치 아침 구름이나 이슬처럼 쉽게 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의 책망하셨고, 선지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형벌의 무기였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언약에 대한 충성을 원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원하신다(4~6절).
이스라엘의 반역은 반복된 것이었다. 아담은 길르앗의 한 성읍으로, 이스라엘은 이곳에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범죄했다. 길르앗은 요단 강 동편의 넓은 지역으로, 호세아는 그곳이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하는 성으로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아담에서 세겜으로 가는 도중에 제사장들마저 살인을 범했다(7~9절).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해 지적한다. 그들은 가증한 일(우상 숭배)를 하나님의 집에서 범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 백성을 추수하실 것이다. 통상 추수는 좋은 의미이지만, 이 경우에는 커다란 낫을 든 심판의 모습을 상징한다(10~11절).
기도
하나님께 돌아가 날마다 하나님을 힘써 알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삶 속으로
어린 자녀와 숨바꼭질을 할 때가 있다. 통상 숨바꼭질은 술래가 찾지 못하도록 잘 숨어야 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목적은 아이가 못 찾도록 숨는 것에 있지 않고, 아이가 발견하도록 숨는 것에 있다. “아빠, 여기 있네.”라고 찾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때로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그분을 알고 발견하는 것에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우고 찾고자 노력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실 것이고 그분에 대해 더욱 풍성히 알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