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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언 Nov 20. 2019

니글의 이파리

왜 그는 커다란 캔버스를 준비했을까

J. R. R 톨킨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가 쓴 <반지의 제왕>은 C. S. 루이스가 쓴 <나니아 연대기>와 더불어 서양 고전 판타지의 정수로 꼽히는 작품으로, 시리즈 1권인 <반지원정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2위이기도 하다. 영화로 제작되기도 한 <반지의 제왕>은 오늘날까지도 전세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을 쓰는 도중에 톨킨이 쓴 <니글의 이파리>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니글이라는 이름의 화가다. 그에게는 꼭 그리고 싶은 그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큰 나무 한 그루였다. 그는 이파리 하나에서 시작하여 나무 한 그루 전체의 이미지를 늘 마음에 품고 살았다. 나무 뒤쪽으로 펼쳐진 멋진 세계를 상상하며 꿈에 부풀었다. 다른 그림에는 흥미를 잃었고, 머리 속에 담긴 환상을 담아내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만큼 커다란 캔버스를 준비했다. 그의 바램은 죽기 전에 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나무보다 잎에 더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이파리 하나를 그리는데 지나치리만큼 오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음영과 광택, 표면에 맺힌 이슬방울까지 그대로 그리려 온 힘을 쏟았다. 그러다보니 커다란 캔버스의 상당부분은 비어있었다. 


다른 하나는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다. 이웃들이 부탁하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니글은 그림에 집중할 수 없었다. 특히 이웃 남자 패리쉬는 그림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틈만 나면 찾아와 일을 부탁했다. 니글이라는 이름 뜻처럼 "쓸데없어 보이는 시시콜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어느 날 니글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페리쉬는 아내가 아프니 빗방울이 떨어지는 차가운 거리를 달려가 의사를 불러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결국 니글은 독감에 걸려 고열에 시달렸다. 아픈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그림을 끝내려고 버둥거리는데 죽음의 사자가 찾아왔다. 니글은 엉엉 울며 외쳤다. "제발, 아직 완성하지 못했단 말이예요." 니글이 죽은 후, 그가 그리던 그림은 "잎사귀: 니글작"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의 눈길조차 닿지 않는 마을 박물관 구석에 오랫도록 걸려 있었다. 니글은 잊혀졌고, 그의 작품 또한 미완성으로 기껏해야 몇몇 사람들에게만 도움이 될 뿐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 '니글'은 톨킨 자신이었다. <반지의 제왕> 집필에 몰두했던 톨킨은 어느 순간 막다른 골목에 부닥쳤다. 그는 이전까지 세상이 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써 내겠다는 비전이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서사의 일부를 완성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었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까지 터지면서 전생의 참상 가운데 글에 집중할 수 없었고, 작품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허무함에 그는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니글은 당시를 살았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이 전 유럽을 휩쓸었고, 많은 이들은 자신이 그리던 캔버스에서 내려와 전쟁터로 나가야만 했고, 그들이 그리던 그림은 미완성으로 수많은 묘비들 중 하나처럼 남겨져 있었다. 동시에 니글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꿈이 있었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만한 커다란 캔버스 위에 그 꿈을 그리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니글의 이파리처럼 초라하고 하찮은 것들만 우리 인생에 남겨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삶 가운데 주어진 책임에 충실하다 보니(이야기 속의 니글처럼 죽는 순간까지 책임을 다하다가), 정작 자신조차도 꿈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하지만 니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니글은 하늘 나라의 높은 산들로 가는 열차에 태워졌다. 니글에게는 두 가지 음성이 들려왔다.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인생을 낭비했다는 꾸짖음과,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는 칭찬의 말이었다. 니글이 하늘나라 가장 자리쯤 이르렀을 무렵, 마치 상급처럼 무언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니글은 얼른 그리고 달려갔다. 그것은 바로 그가 완성하고자 했던 그림이었다. 비록 이파리 하나만을 그리고 죽음을 맞이했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그 그림이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실물로 말이다. 니글은 나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선물이야"


톨킨은 왜 이 소설을 썼을까? 자신의 작업이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자신에게 확신시켜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삶과 일에, 심지어 자신의 꿈에 지쳐버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쓴 것은 아닐까? 삶의 진정한 가치와 평가는 무엇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꿈꾸고 살았느냐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무언가를 꿈꾸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이미 선물을 받았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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