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승언 Sep 07. 2019

때로는 숭어도 필요합니다

아놀드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의 원리


20세기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 연구의 기본단위를 국가나 민족이 아닌 보다 포괄적인 문명으로 보았다. 그는 역사의 기본단위가 되는 문명의 발전과 쇠망을 ‘도전과 응전의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구약성경의 <욥기>와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타나는 신과 악마와의 조우로부터 도전과 응전의 개념을 얻었다고 한다.


토인비가 도전과 응전의 원리로 역사와 문명의 흥망성쇠를 설명할 때 즐겨 인용한 예화가 있다.


런던 시민이 좋아하는 요리 가운데 청어요리가 있는데, 런던 시민들은 특히 북해에서 잡힌 싱싱한 청어요리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데 북해에서 잡은 청어를 런던까지 수송하려면 보통 빨라야 2~3일이 걸리는데 그 동안 신선도가 떨어져 갓 잡은 싱싱한 청어의 맛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 청어를 수송하는 상인 가운데 유독 한 사람만은 언제나 싱싱하고 팔팔한 청어를 런던 시민에게 공급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북해에서 잡은 청어를 그렇게 싱싱한 채로 런던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북해산 청어를 운송할 때 큰 물탱크에 숭어를 두세 마리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그 숭어가 청어를 잡아먹으려 하기 때문에 청어들은 숭어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게 됩니다. 이 가운데 물론 몇 마리는 잡아 먹히게 되지만, 숭어 덕분에 대부분의 청어들은 도망 다니느라 팔팔하게 살아 런던까지 올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역사와 문명은 힘든 도전에 대한 지혜로운 응전이 있을 때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이 비유로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다만 역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에도 때로는 숭어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요인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어려움이나 고난, 도전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어떤 성장이나 성숙도 기대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보다 창조적이고 생동감이 넘치기 위해서는 때로는 숭어의 역할을 하는 도전이 필요할 지 모른다.


창공을 나는 새가 심한 공기의 저항을 받게 되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지 모른다. “이 공기의 저항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 불어오는 바람만 없다면 휠씬 더 자유롭게 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이 새가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불어오는 바람이 없다면, 그래서 공기의 저항이 전혀 없는 진공 속에서는 단 한 치도 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칸트가 든 예화다.


인생을 살다보면 시련과 역경을 만날 때가 있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관계적 어려움을 경험할 때도 있다. 물론 이런 시련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런 고난이 우리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역경 가운데서도 한 걸음씩 걸어갈 줄 안다면, 언젠가 더 아름답게 빚어진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삶은 희극일까요? 비극일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