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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언 Sep 07. 2019

인공지능(AI), 인간이 무엇인지 묻다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인간과 기계의 전쟁 이야기를 다룬 "터미네이터"라는 영화가 있다. 공상과학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즐겨 봤던 영화다. 이 영화는 1984년 1편이 제작된 후 지금까지 수십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늘 "I'll be back!(반드시 다시 돌아온다)"이라는 미래에서 온 주인공의 대사로 마무리 짓는다. 이 약속은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몇 년 전에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 씨의 바둑 대결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자사의 기술력을 알리려는 구글과 바둑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려는 한국기원의 바램이 맞아 시작된 이 대국은, 기대 대로 흥행에 대단히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벤트성 대회였기는 하지만, 어쩌면 영화 터미네이터의 대사처럼 우리는 앞으로 보다 자주 이런 기계와 인간의 대결을 접하게 될 것이다.


알파고와의 대국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전망들이 나왔다. 한편에서는 인공지능의 개발이 인류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고취시켰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에게 미칠 폐해를 중심으로 불안한 미래를 그렸다. 실제로 인공지능으로 사라질 직업군까지 언론에서 구체적으로 보도되기까지 했다. 물론 이런 전망들이 시기상조임에는 틀림없지만, 가쉽거리로 넘길만한 일은 아니다. 특히 미래의 직업을 준비해야 하는 젊은이들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인공지능 로봇을 소재로 한 영국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에는 보육과 가사를 위한 인공지능로봇을 등장하는데, 이 로봇은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엄마와 달리, 항상 친절하고 상냥하고 모든 것을 훌륭히 처리한다. 그 결과 아이들과 남편은 엄마와 아내보다는 이 로봇을 더 좋아하게 된다. 과한 설정이지만, 언젠가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난 기계의 등장에 이렇게 당혹스러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도대체 왜 인공지능의 등장이 이렇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만큼 인간이 기계화 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무엇을 잘 하느냐, 즉 외적 능력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스펙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인간을 기능적으로만 보고 그 능력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다 보니,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난 기계의 등장이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우리에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묻는 것 같다. 점점 기계를 닮아가는 인간에게 고개를 돌리며, "왜 나 따라와?"라고 이야기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럼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성탄절이 가까운 어느 해 겨울, 미국 중서부의 한 작은 도시의 우체국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성탄절 카드를 몇 장 붙이려고 우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성탄시즌이다 보니 유난히 그날따라 줄이 길었습니다. 그 때 우체국 직원이 줄 서 있는 손님들에게 이렇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특별한 우편물이 아니고 일반 우표나 엽서를 사실 분들은 복도에 설치된 자동판매기를 이용하십시오."

그러자 많은 사람이 복도 쪽 자동판매기에서 우표를 샀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여전히 그 줄에 서 계셨습니다. 나이 드신 분이 힘들게 서 계시는 모습을 본 우체국 직원이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저기 가셔서 우표를 뽑으시면 더 빠른데요." 그러자 할머니는 우체국 직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기계는 저를 건강하게 해 주지 못합니다."

이 말에 우체국 직원이 의아해 하면서 무슨 뜻인지를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여기 자주 오시는 것 아시죠? 제가 여기 올 때마다 여러분들이 저를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고 또 친절하게 말을 건네주어서, 여기에 오면 제 마음이 즐겁고 제 몸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저 기계는 나를 그렇게 대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건강하게 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인가를 얼마나 빨리 성공적으로 행했느냐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온기와 향기, 마음 씀씀이에 있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 속의 인공지능로봇과 달리 엄마가 화를 내는 이유 역시 애정이라는 감정 때문이고, 그것이 기계와 다른 인간만의 특징이진 않을까. 지금처럼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영역만을 찾으며 미래를 대비하다가는 "I'll be back"이라는 터미테이터의 대사처럼 또다시 동일한 현상을 맞이하게 될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사라질 직업들이 아니라, 잃어버리고 있는 인간됨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얼마나 인간적인 사람일까? 분주함 가운데서도 사무적인 만남 가운데서도 따스한 말 한 마디, 미소 한 번 짓을 줄 알았으면, 그래서 인간냄새가 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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