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승언 Feb 24. 2020

코로나, 문을 걸어잠고 있지는 않습니까


미래학자들은 인류를 위협할 심각한 도전 중 하나로 "국제적인 유행병"을 꼽는다. 교통,통신 기술의 발달로 전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어지고, 이에 따라 국지적인 풍토병들이 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시작해서 북유럽까지 전파되는데 2년 넘게 걸린 반면, 지금은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유행병이 몇 달만에 세계각처에 퍼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시 메르스, 사스, 코로나19 바이러스 등 국제적 유행병에 의해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유행병의 위협은 앞으로 더욱 빈번이, 혹은 일상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런 국제적인 유행병이 발생할 때 제일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원인이다. 의학적인 이유 외, 이런 질병이 왜 유행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들이 존재해 왔다. 실제로 페스트가 유행할 당시, 로마 카톨릭은 페스트를 하나님의 징계로 보고 페스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한다며 공로와 헌금을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노력은 아무런 효험이 없었고, 결국 성직자들의 권위는 땅에 추락하고 말았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이번 사태를 특정 지역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자신들을 무너뜨리려 하는 마귀의 짓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말들이 얼마나 섣부른 판단이며 아전인수적인 해석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럼 이런 병들이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런 이유나 의미 없이 우연히 무분별하게 유행하는 것일까? 유행병이 창궐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우리의 "사랑없음"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 한 쪽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존재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비만으로 인해 죽는 사람 역시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적인 유행병의 창궐은 이런 부조리함을, 지구 한쪽에서 일어나는 빈곤과 질병, 열악한 환경의 문제가 결코 우리와 무관한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이 유행병의 해결책으로 낙후된 지역을 돕는 국제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들 유행병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실은 인류가 한 공동체이며,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만이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점이 아닐까 한다.


기록에 의하면, 2~3세기 가공할만한 역병이 로마제국을 강타했다. 이로 인해 로마인구의 많게는 1/3 정도가 죽어갔고, 승승장구하던 로마제국의 야심 역시 꺾이게 되었다. 그런데 워싱턴 대학교의 사회학 및 비교종교학 교수인 로드니 스타크의 분석에 의하면, 이 시기에 기독교는 오히려 제국의 지배적인 신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왜일까? 역병이 유행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졌고, 문을 걸어잠고 집안에 숨었다. 병든 자들은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했고, 죽어간 시체들은 곳곳에 버려졌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병든 자들을 돌보고 죽은 자들을(자신과 무관한 사람들조차) 장례를 치러주었고, 그 결과 병든 자들이 회복되고 시체들을 장례함으로 병이 전파되는 것을 막게 된다. 이런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으로 비춰졌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디오니시우스 주교는 알렉산드리아 교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우리 기독교인 형제들은 대부분 무한한 사랑과 충성심을 보여주었으며 한시도 몸을 사리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아픈 자를 도맡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필요를 공급하고 섬겼다. 그리고 병자들과 함께 평안과 기쁨 속에 생을 마감했다. 그들은 환자로부터 병이 옮자 그 아픔을 자신에게로 끌어와 기꺼이 고통을 감내했다. 많은 이들은 다른 이를 간호하고 치유하다가 사망을 자신에게로 옮겨와 대신 죽음을 맞이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사회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두려움으로 인해 과거 로마인들처럼 점점 더 문을 걸어잠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섬길 줄  아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유행병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우리가 한 공동체임을 깨닫고 서로를 돌보는 것에, 공동체성의 회복과 섬김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에 큰 문제가 없고 바이러스 노출 가능성이 적다면 국내산 천마스크를 세탁해서 쓰고 전문마스크는 의료인과 환자분들에게 양보하는 게 품귀현상을 줄일 듯 하다"는 글을 읽었다.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서로를 배려하고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소망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카프카의 <변신>, 무화과나뭇잎으로 치마를 엮는 인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