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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언 Mar 06. 2020

실천하는 위선

최근에 모 정치인이 대구에 내려가 의료봉사를 하는 사진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를 두고 이러저러한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 사진을 담은 기사에 실린 댓글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실천하는 위선이 실천하지 않는 선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어느 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이 배우는 연기력으로 많은 이들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는 특정 배역을 맡으면 1년 정도 자신이 맡은 배역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그 사람 자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몰라도, 영화 촬영이 끝난 후 배역에게서 벗어나 원래 자신으로 돌아오는데 또 다시 1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이가 들수록 악역은 되도록 안 맡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나는 대학시절 여러 해 동안 철거지역에 위치한 공부방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매주 1회씩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공부를 도와주는 봉사였다. 그 시절 나는 왜 봉사활동을 했을까? 아이들이 좋아서 돕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까. 보다 높은 이상과 정의를 위해서였을까. 다른 누군가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함이었을까. 그저 친구들이랑 다니는 것이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복합된 것일까. 그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한 점은 봉사활동을 했다는 사실이다. 


위선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만 착한 체함, 또는 그런 짓이나 일"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 내면에는 선과 더불어 악과 추함이 항상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이란 원래 위선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선한 존재가 아니라면, 차라리 실천하는 위선자가 되어보면 어떨까. 되도록이면 악역이 아니라 선역을 맡으려 한다는 배우처럼, 위선이라도 선하게 살고자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변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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