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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언 Mar 19. 2020

두려움을 두려워하다


1933년 경제대공황이라는 국가적 위기의 한복판에서 취임한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가 단 한가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그럼 왜 그는 이런 말을 했을까?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 자체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잘못된 대응으로 인해 더 큰 어려움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두려움을 가장 잘 이용한 집단 중 하나는 파시즘이다. 로버트 팩스턴은 그의 책 <파시즘>에서 1차세계대전은 파시즘이 탄생할 수 있는 문화사회정치적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전쟁에 대한 폐허가 된 현실 앞에서 기존 가치관의 붕괴와 공동체 쇠락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커졌고, 이를 파시즘은 적절히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파시즘은 철학적 사상보다는 감정에 기반했다고 그는 분석한다. 특히 파시즘은 다원주의 진화론에 의거한 폭력의 정당화함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인류 역사에 남기게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온 나라가 두려움에 빠진 것이 현실이다. 이런 두려움의 원천은 무엇일까? 아마도 무지일 것이다. "신종"이라는 이름처럼 코로나19가 어떻게 전염되는지, 얼마나 영향력이 큰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없기에 두려움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두려움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어느 식당에서 정기소독을 했는데, 확진자가 다녀갔다고 잘못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눈물 짓는 식당 주인의 모습 속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단순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넘어 서로에 대한 과도한 경계가 낳은 상처일 것이다. 서로에 대한 혐오나 비판, 개인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등 코로나19 자체가 아니라 코로나19가 낳은 두려움으로 우리 사회는 더 큰 상처를 받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루즈벨트의 말처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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