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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언 Mar 20. 2020

언어의 차이가 만드는 불편함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듣는 이가 받아들이는 기분이 다르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우리나라 속담이다. 발음은 비슷할 수 있지만 의미가 다를 수 있으므로 주의하라는 뜻이다.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於二阿異(어이아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사고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신성로마제국의 카를로스 대제의 경우, "두 번째 언어를 갖는 것은 두 개의 영혼을 갖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누군가 실수로 꽃병을 깨뜨렸다고 가정해 보자. 영어에서는 "그가 꽃병을 깨뜨렸다."고 하지만, 스페인어로는 "꽃병이 깨졌다."고 말한다. 심지어 영어에서는 "나는 내 팔을 부러뜨렸어."라는 표현까지 있다. 그 결과, 리라 보로딧츠키의 실험에 의하면, 동일한 사고를 보았을 때 영어사용자는 스페인어사용자보다 누가 사고를 냈는지(주체)를 휠씬 잘 기억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긴급재난문자를 자주 받게 된다. 그 내용 중에는 "예배를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자도 있는데, 문자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왜일까? 기독교인에게 예배가 갖는 의미가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예배" 대신에 "모임"이라는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보다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물론 신천지의 집단감염으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커서 생긴 현상이겠지만, 신천지 집단감염 역시 예배 외 집단거주나 각종 모임을 통해 전파되었을 가능성도 있기에 예배로 한정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모임이라는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했을 때, 기독교의 예배만을 제재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연일 뉴스에서는 "확진자"과 "사망자"에 대한 보도가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죽음을 "몇 명의 사망자"라는 숫자로만 접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는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아내, 그리고 어린 자녀가 있을텐데.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한 생명의 죽임일텐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전파자"라는 표현까지 사용되기도 했다. 치료를 받아야하고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일텐데, 마치 하나의 매개체로만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힘든 시기다. 다만 서로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표현만 사용할 수 있다면, 지금 겪고 있는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줄이고 어려움을 함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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