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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언 Sep 09. 2019

영화 <관상>, 존재와 시선을 생각하다

<관상>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세조(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내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관상가의 이야기를 다룬 팩션(Faction)이다.


영화에선 주인공 내경이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특히 그는 험악하게 생긴 용의자들이 아닌, 선하게 생긴 피의자의 남편을 진범으로 지목하게 된다. 남편의 관상을 통해 부인과의 관계가 좋지 않음을 알아내고, 살인까지 저질렀음을 유추해낸 것이다. 지어낸 이야기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사건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상에 남았다.


경찰을 하셨던 분에게 들은 이야기다. 범죄를 저지르다 잡힌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는 말은 "처음"이라는 변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처음 범죄를 저질렀는데 잡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잡힌 것은 처음일지 몰라도, 그 전에 수없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도둑질도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빈번해지고 대범해지다가 결국 붙잡히게 된다는 설명이다. 공감이 되었다.


나무를 보면 열매를 알듯이, 존재가 행위를 결정하는 것 같다. 달리 말하면 평소에 어떤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가졌는지가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살인은 미움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관상가인 내경이 꿰뚫은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존재보다는 행위에, 인격보다는 역량에 관심이 많다는 현실이 아닐까 한다.


영화를 보면서 또 하나 인상에 남은 장면은 내경의 마지막 대사였다. “자신은 파도만 보았지만 바람을 보지 못했다.”고 삶을 회고한다. 파도를 보았지만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개인의 얼굴과 운명은 보려고 노력했지만, 정작 시대의 거대한 흐름은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도 내경처럼 파도만 보다가 바람은 못 보는 것은 아닐까. 지금 당장 내 눈앞에 펼쳐진 사건들과 문제들, 그리고 바램들 바라보다가, 정작 필요한 인생을 바라보는 긴 안목을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벤필드 교수는 행복과 성공을 결정짓는 핵심요소로 '시간전망'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시간전망이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 시간까지 고려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의미한다. 즉 1달 뒤를 고려해서 행동하는 사람과 1년 뒤를 고려해서 행동하는 사람은 선택에 있어서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밴필드 교수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시간 전망이 길면 길수록 행복과 성공의 비율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시간 전망이 길수록 당장의 눈 앞에 이익을 얽매이지 않을 수도 있고 시련과 역경이 닥쳐도 더 잘 극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경의 말처럼 인생의 긴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의 관심은 얼마나 존재에 맞추어져 있는지, 나는 얼마나 긴 시간 전망을 갖고 있는지 돌아보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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