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쓴 성경을 어떻게 믿나요?
신약성경의 신뢰성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성경은 기독교인이 쓴 책 아닌가요? 그럼 기독교인이 쓴 책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나요? 기독교에 유리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나요? 성경 외에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야 믿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물론 성경은 기독교인이 쓴 책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썼기 때문에 성경은 편향되어 있고 믿기 어려울까?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 정권은 동맹국들과 함께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생체실험을 하고 고문하고 생명을 빼앗았다. 결국 이들에 의해 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다. 이런 나치의 만행에 대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록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대학살을 결코 잊지 않고, 나아가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기록에 대해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당신들은 사건의 당사자입니다. 따라서 당신들은 객관적으로 진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신들의 기록은 편견이 가득하기에 믿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특정 메시지를 전하려는 열정은 때로는 무엇인가를 과장하게도 만들지만, 때로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이 경험한 일을 사실 그대로 전하기만 해도 충분히 경각심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피해자들의 기록이라는 이유만으로 객관성을 잃었다고 말할 수 없듯이, 기독교인이 기록했다는 이유만으로 성경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또한 중립적이라고 반드시 객관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한때 일본이 우리 나라를 강제로 점령했던 때가 있었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럼 그들의 만행을 누가 확인해 줄 수 있을까?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는 피해자라서 과장될 수밖에 없으므로 제 3자의 이야기만을 신뢰해야 하는가? 제 3자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사실을 왜곡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이런 왜곡이 역사 속에서 종종 일어났음을 우리는 보았다. 결국 문제는 누가 기록했느냐가 아니다. 기록자가 아니라 기록 자체가 얼마나 신뢰할만한 지 검토해야 한다. 그럼 신약성경의 기록은 신뢰할 수 있을까?
비기독교인이 전하는 신약성경
요세푸스라는 유대인 역사가가 있다. 그는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사관으로 종사하면서 로마에서 일어난 역사적 기록을 남겨두었다.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그는 <유대인의 고대생활>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이 당시(빌라도 시절)에 예수라는 이름의 현자가 있었다. 그의 행실은 선했으며 매우 덕망 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유대인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 출신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는 그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의 제자 되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제자로 남기를 고집했다.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사흘 만에 자신들에게 나타났으며, 그가 살아 있었다고 보고했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는 예전에 선지자들이 자세히 언급했던 메시아였을지도 모르겠다."
요세푸스 외에도 예수님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당대의 비기독교인 저술가가 10명이나 된다. 물론 10명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활동할 당시 로마를 다스리던 황제 디베료 가이사를 언급하는 비기독교인의 자료는 9개 밖에 없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고대 그리스-로마 역사가들의 기록은 현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로마제국의 변방에 위치한, 역사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유대의 한 인물에 대한 기록이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로마 황제의 기록보다 많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비기독교인 역사가들이 전한 내용은 신약성경의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즉 신약성경의 내용은 비기독교인들의 기록에서도 확증되고 있다.
오늘 여기서 일어난 신약성경
대부분의 신화와 전설은 "아주 먼 옛날"로 시작한다. 그럼 왜 "아주 먼 옛날"로 시작할까?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났는지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록자가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 반면 신약성경은 "오늘 여기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무신론자인 존 로빈슨과 같은 비평가들조차도 신약성경이 매우 이른 시기에 기록된 것임을 인정한다. <신의 죽음> 운동으로 유명해진 로빈슨은 <신약 기록연대의 재정립>에서 신약성경 대다수의 책들이 AD 40년부터 65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즉 대부분의 목격자들이 생존해 있었고, 임의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표적인 예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8)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성인 남자만 5백명이 넘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수천 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신약성경 기록 당시 살아 있었다. 만약 신약성경의 기록에 의구심이 생긴다면 그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었다. 게다가 목격자 중엔 야고보와 같은 회의론자(그는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다)와 바울과 같은 반대자(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까지 있었다. 목격자들 중엔 예수님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이들도 많았기에, 잘못된 기록이 있었다면 이들이 먼저 반론을 제기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야고보와 바울과 같은 회의론자와 반대자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을까? 그들이 목격한 사실 때문이었다. 즉 그들이 목격한 내용을 조작한 것이 아니라, 목격한 내용이 그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비생산적인 신약성경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조작하거나 새롭게 지어낼 때는 목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런데 신약성경의 기록에는 이런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신약성경에는 제자들(이들 중엔 신약성경의 기록자가 포함되어 있다)에 대한 여러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시종일관 옹졸하고 질투가 많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예수님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겁쟁이와 배신자로 묘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초대교회 지도자였던 베드로다. 분명 교회의 지도자였던 베드로에 대한 이미지는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에는 베드로가 얼마나 결점이 많은 사람이었는지를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자신의 스승을 배신하고 저주하다시피 외면하고 도망쳤던 이야기를 상세히 기록했다. 신약성경은 도대체 왜 교회의 중심 인물인 베드로가 저지른 끔찍한 실수를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을까? 특히 명예를 중요시 여기는 당시 문화에서는 이런 잘못은 지도자로서의 자격은 물론,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신빙성 자체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만약 신약성경이 지어내고 꾸며진 것이라면 이런 이야기는 기록할 이유가 전혀 없다.
부활에 대한 증인 역시 마찬가지다. 신약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첫 번째 목격자는 여인들이었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여성의 증언은 법정에서 인정도 받지 못할 정도로 지위가 낮았다. 그럼 왜 굳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되는 부활의 증인으로 여성을 앞세웠을까? 오히려 제자들은 여인들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고 신약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만약 성경이 지어낸 이야기라면 결코 여성들을 증인을 내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사회의 주류였던 남자들을 앞세우는 것이 휠씬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기록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라는 설명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대체로 사람은 어떤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기가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어떤 이익을 누리게 될까? 친구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와 친해지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런 것에 관심이 없다. 만약 신약성경이 제자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면 그들이 얻은 유익은 무엇일까? 오히려 이로 인해 제자들은 자신이 속해 있던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외면 당하고 버림 받았다. 게다가 온갖 핍박과 고문, 죽음까지 당했다. 자신들이 겁쟁이였고 배신자였으며 형편 없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이런 일들을 당한 것일까? 아니다. 제자들이 신약성경을 기록한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전하는 신약성경
보통 신화나 전설은 저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반면 신약성경은 정확한 저자가 있으며, 저자의 기록이 사실임을 증명해 줄 증인들도 많다. 또한 신화나 전설은 사람들의 입에서 전달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풀려지게 된다. 왜일까? 신화나 전설을 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임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록자나 전달자들이 자유롭게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약성경은 초기 기록될 때부터 시작해서 그 내용이 변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심지어 오류처럼 보이는 내용들조차 수정하거나 보완하지 않는다. 만약 신약성경이 지어낸 이야기라면, 그 내용이 고치면 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약성경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했기에, 신약성경의 기록자들이나 전달자들은 수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신화나 전설이 생성되는 데는 수백 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또한 신화나 전설은 작은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부풀러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신화나 전설에는 '실명'이 거론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이와 같은 전설이나 신화의 기록양식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신약성경은 당시 일어났던 일들을 사소한 것까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만약 지어낸 이야기라면 굳이 역사적 인물들과 시대 배경들을 구체적으로 적어 놓을 필요가 없다. 비판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이야기의 정확성을 검증할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약성경에는 당시 역사적 인물과 상황에 대한 자세히 기록하고 있고, 이는 고고학 연구를 통해 발견한 사실과도 일치한다.
셔먼 화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사도행전의 경우 그 역사성은 두말할 나위 없이 확실하다. 사도행전의 역사성을 부인하려는 어떤 시도도 이제는 분명 터무니 없어 보인다. 로마사가들은 오랫동안 이를 당연하게 여겨왔다." 고전학자요 고고학자인 윌리엄 램지는 심각한 회의론자 입장에서 사도행전을 연구했지만, 연구를 통해 발견한 내용 때문에 마음을 바뀌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것(사도행전 연구)을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했다. 당시에 그 주제를 꼼꼼하게 탐구하는 것은 내 삶의 계획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는 소아시아의 지세, 고대 생활 모습, 그리고 사회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권위로서 사도행전을 자주 접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이 역사 기록이 여러 세부 사항에서 놀라운 진실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쓴 책이기 때문에 편향적이라서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어쩌면 이런 생각 자체가 편향적일 수 있다. 이런 선입견을 내려놓고 신약성경이 전하는 기록들을 읽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