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일본 목회자분들과 만나 교제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일본에는 예언카페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 가면 목회자가 돈을 받고 예언과 축복기도를 해 주는데,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이 곳에 와서 예언과 축복기도를 받는다. 이는 일본의 종교적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일본 사람들은 어느 신이 되었든 자신을 축복해 주면 좋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결혼식은 성당에서 장례식은 절에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 사람들은 다양한 종교에 대해 열려 있다. 그 결과 전국에 있는 신사, 사찰, 성당 등에 정식으로 등록된 신자의 수가 일본 전체 인구수보다 많다. 물론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는 참된 종교인은 20% 정도다. 예언카페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신기하도 했지만,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나 램키의 <도파미네이션>이라는 책을 보면 "행복에 중독된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현대인들은 개인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행복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대표적인 예로 결혼은 과거에는 서로를 향한 사랑의 완성으로 서로에 대한 헌신과 희생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결혼은 개인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지며 개인의 행복에 유익하지 않다면 굳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쉽게 이혼을 선택하게 된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돕는 선행마저도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여겨지고, '이타심'마저도 자신의 웰빙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마치 하나의 스펙처럼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종교인은 구원 받기 위해 태어났지만 심리학적 인간은 기뻐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필립 리프의 말처럼, 현대문화 속에서는 개인의 행복의 최고의 가치이며, 마치 예언카페에서 축복기도를 받는 것처럼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환영하게 된 것이다.
그럼 그 결과는 어떨까? 세계행복보고서는 156개 국가를 대상으로 각국의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지수에 따라 국가순위를 매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2008년보다 2018년에 더 낮아졌다. 미국과 비슷한 부와 사회적 환경을 갖춘 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일본, 뉴질랜드 등도 비슷한 하락세를 보였다. 그럼 왜 전에 없던 부와 자유를 누리며 놀라울 정도의 기술과 의학적 진보가 이루어졌는데, 점점 더 과거보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일까? <도파미네이션>의 애라 램키는 "우리 모두가 불행해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불행을 피하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행복을 지나치게 추구한 결과 오히려 불행해졌다는 것이다. 결혼을 개인의 행복의 추구의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에 결혼이 주는 참된 관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선행마저도 자신의 웰빙을 위한 수단으로 보기에 이타심이 주는 참된 기쁨을 잃어버렸다는 진단이다. 행복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산물이며, 행복이 목표가 될 때 오히려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행복에 중독된 사람은 아닌지, 행복을 추구하느라 삶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