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구사

자신이 사람인 줄 알았던 어느 오징어의 이야기

by 작은길벗 소로우

영업직이나 서비스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고객 응대 시 언어구사에 특별히 유의를 해야 한다.

나는 얼마 전 영화관에 갔다가 퍽 슬픈 일을 겪었다.

영화 시작시간에 쫓기는 터라, 부리나케 입장권을 자동 매표기에서 출력하고, 스낵코너 앞 와이프에게 걸어갔다. 와이프는 내게 영수증을 건네며 얘기했다.

"계산했어, 나 화장실 갔다 올게. 차례 되면 받아..."

잠시 후 스낵코너 젊은 직원분이 내게 물었다.

"오징어시죠?"

"네???"

"오징어 아니세요?"

나는 뒤편 게시문을 봤다. 팝콘과 버터를 바른 오징어 구이를 파는 곳이었다.

나는 차마 내가 오징어라고 말이 나오지 않다. 와이프와 극장에 앉은 후, 정우성 같은 배우가 나오면 난 10분 이내에 바로 오징어 된다.

근데 입장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오징어가 돼야 하나?
나는 잠시 망설였다.

직원 분은 머뭇거리는 날 보고, 내 뒤에 서서 오징어를 기다리는 것 같은 다른 분쪽을 쳐다보았다.

아, 이건 순서가 아니지...

난 재빨리 대답했다.

"네, 오징어예요."

난 콜라와 아이스티, 버터를 바른 오징어 구이를 들고 와이프와 함께 상영 6관으로 들어갔다.

바쁜 직장생활, 생활고에 지쳐 이제 남성미라고는 거의 사라지고,
잘록한 어깨에 떡 벌어진 배만 가진 한 남자에게,
자신이 전에도 오징어였고, 지금도 오징어라고 꼭 선언하게 해야 하는 건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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