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에 대한 편집
어떤 럭셔리 브랜드 잡지의 편집장이 있었다. 그는 최근 다른 잡지사의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주제는 편집장이 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목표를 정하고, 어떻게 목적지향적으로 살아 왔는지 말했다.
그는 기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편집장이 되려면 일간지보다는 긴 호흡을 가진 잡지사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과감히 평론 잡지사로 옮겼다. 그 후 그는 비쥬얼과 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영화잡지사로 옮겼다. 그 후 더 폭 넓은 경험을 위해 프리랜서 독립을 했고, 대기업 사보의 편집을 담당했다. 나중에 경제력 있는 중년층이 문화 소비주체로 부상하는 것을 보고, 그 동안 성실히 준비해 온 본인이 럭셔리 브랜드지의 한국판 편집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단계마다 의도적 선택과 노력을 경주해서, 마침내 꿈을 이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곤 편집장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변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다르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건 그의 삶을 다 지켜본 그의 부모였다.
사실, 그가 기자가 된 것은, 사법고시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재수를 고민할 때, 집안 어른이 '니 당숙이 좌빨 전력이 있어, 혹시 합격하더라도, 임용은 어려울 것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잡지사로 옮긴 것은, 나름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신문사에서 해고되었기 때문이다. 복직 투쟁보다는 생업을 찾는게 더 급했다. 그런데 옮긴 잡지사에서 정치 평론를 하는 것이 밥벌이로서는 시원찮았다. 그래서, 별로 전문성도 없는 영화 잡지사로 옮기게 되었다. 그 이후에 사보 편집인이 된 것은, 스크린, 키노 등의 영화잡지가 줄줄이 폐간했고, 씨네 21마저 곧 폐간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는 대기업 홍보팀에서 온라인 사보 관련 일감을 받았는데, 정규직 채용은 안 된다고 들었고 그게 프리랜서 생활의 시작이었다.
브랜드지 한국판 편집장이 된 것은, 석달에 한번 나오는 잡지인데, 사실 출판을 걸러도 독자 항의 같은 것도 없었고, 그 회사는 딱 고 정도만 해 줄 고참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잡지는 일년에 서너 번, 타워팰리스에 배송되고, 주로 라면냄비 받침대로 쓰인다.
나는 그가 편집장이 된 것이 정교한 계획과 실천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불가피한 선택과 우연이 섞인 결과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그가 편집에 매우 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합목적적인 인생에 대한 글감을 찾겠다는 생각으로 그 잡지를 정독했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애초부터 제목은, ‘편집장의 합목적적 인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