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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길벗 소로우 Mar 05. 2022

나의 바나나

내가 어렸을 때 바나나는 정말 귀한 과일이었다. 바나나 한 개에 8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500원이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바나나는 다 수입식품이었던 시절이었다.


그 후, 바나나가 좀 덜 귀해진 시기에. 대학교에 입학을 해서 가니 구내식당에 한 끼 식권이 450원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늦게까지 놀이터에서 노는 동생을 집으로 데려 올 땐, 엄마가 바나나 사 왔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집에 와서 동생은 크게 실망하고 분통을 터트렸었다.


나는 거짓말만 한 것은 아니었다. 동생이 내 말이 거짓말이라고 여기고 반신반의하며 집에 왔을 때, 어머니께서 진짜 바나나를 주신 적도 있었다. 그럴 때 동생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바나나를 거의 빨아먹었다. 천천히 먹으려고 했다.


그 후 수십 년이 지났는데, 나는 지금도 바나나를 보면 은근히 반갑다. 마트에 가도 바나나의 환한 노란색을 보면 기분이 좋다. 해외 출장을 가서 호텔 아침 부페를 먹을 땐, 마지막에 바나나 한 개를 먹는다. 지금도 우리 집 거실 구석에 바나나가 놓여 있고, 그걸 보는 나는 왠지 내가 매우 풍족한 중산층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바나나는 그때에 비하면 싸구려 과일이다. 요즘 누가 그리 바나나에 열광하겠는가?


이 얘기를 왜 하나면 말이다. 나는 태극기를 흔들며 ‘자유’의 가치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말이다. 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주 약간이지만 나의 바나나처럼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자유라는 것이 보편적으로 누릴  있는 것이어서, 자유가 중요한 어젠다가 아닐 때도 많지만, 자유가 외국에서 수입되어  바나나와 같이 진귀한 가치처럼 여겨졌던 시절,  시절을 살았던 그이들은 자유를 얼마나 갈망했을 것인가? 바나나의 가격이 더욱 싸지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보편재가 되었다 할찌라도 자기만의 바나나 추억을 떠올리며 바나나를 사랑하고 나나를 과하게 옹호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바나나를 외국에서 수입되어 운 좋게 한번 먹을 수 있는 고급 과일이라 여기는 생각의 관성이 내게 아직도 남아 있듯이, 자유라는 것이 강대국에서 수입되어 우리 민족에게 온, 즉 운 좋게 한번 누리고, 언제라도 금방 빼앗길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 그 두 생각의 관성은 뭐가 다를까?


태극기 부대 분들을 한 번씩 지하철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감사한 것은 그분들의 몸이 건강하고, 생각이 맑기 때문에 저런 생각의 관성 운동에도 계속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바나나와 저분들의 태극기와, 내 후대 세대의 그 무엇이 실상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혹여나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그게 진짜 제각각 다른 것들이다라고 여기는 그 생각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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