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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길벗 소로우 Mar 22. 2022

슬픔 공장

무슨 자재나, 작업서를 주더라도 문제없이, 슬픔을 생산해 내는 공장이 있다.

기쁨 재료는 이틀도 되지 않아 폐기하지만, 슬픔 재료는 알뜰히 활용해 상품을 생산한다. 당장 쓸모 없는 짜투리는 창고에 잘 정리해 두었다가, 다음 슬픔을 생산할 때 활용한다. 슬픔 재료가 손상될까봐 창고는 온도와 습도도 적당히 유지한다.


이 공장은 원래 땅주인이 따로 있다. 땅주인이 처음 이  부지를 내어 주었을 때는 뭔가 '위대한 것' 아니면 '의미'같은 것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듣고 부지를 내어 주었다. 그게 안 되면 적어도 '소소한 기쁨' 같은 것이라도 맟춤생산하겠다고 했었다. 지주는 그런 공장이 생긴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땅으로 인해 세상에 뭔가 좋은 것을 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한참 지나, 지주가 공장을 방문했을 때, 이 공장의 주력 생산품은 슬픔이었다. 물론 시장에는 어느 정도의 '슬픔'도 필요했다. 그러나 시장이 필요로 하는  총량보다도 더 많은 생산을 해서 이미 슬픔이 넘치고, 가격을 회복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도, 슬픔 공장에서는 '슬픔'을 계속 생산해 내고 있었다. 위대, 의미, 기쁨을 생산하겠다는 원래 계획을 뒤엎은 것도 기가 막힐 일이지만, 팔리지도 않는 슬픔을 계속 생산하는 것도 지주에겐 황당한 일이었다.


지주는 물었다.

"대체 제품이 팔리지 않아서 출하장에 가득 쌓여있고, 이젠 복도에까지 쌓아두면서, 슬픔생산을 계속하는 이유가 뭐죠?  팔리면 생산 중단을 해야 하는  아닌가요?"


공장장은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첨엔 '위대한 것'을 생산할려고 했는데, 자본도 모자라고 기술도 모자라서 잘 안 됬습니다. 시제품을 몇개 내었는데 특허분쟁 같은 것에 휘말려, 내 걸로 오히려 딴 인간들이 해 먹기도 하구요.

그래서 '의미'생산 으로 전환을 했는데,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나중엔 '소소한 기쁨' 맞춤 생산도 해 봤는데, 이것도 물량이 너무 없었어요.

그런데 슬픔생산은 참 재미가 있는게, 묵은 재료도 활용할 수가 있고, 또 부품끼리 잘 조합하면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어요. 대량생산도 가능하고 맞춤형 소량생산도 가능하고...공장장으로서 이걸 만들 땐, 제가 뭔가 살아 있단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그때 지주는 알았다.

그 슬픔은 공장장이 20대 때 만들고 싶었던 '위대한 것'과, 30대 때 찾고 싶었던 '의미'와, 40대때 바랬던 '소소한 기쁨'이, 결합되고 복합화되고, 변형된 제품이었다는 것을.

그 슬픔은 사실 공장장만 아는 종합상품이었기에 그는 그 생산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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