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단어 democracy는 우리말로 민주주의라고 흔히 번역된다. 학생들이 단어시험을 칠 때 democracy라는 단어가 나오면, 답란에 민주주의라고 적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인이 가장 신뢰하는 'Meriam Webster" 사전을 보면, democracy의 정의는 '민이 주도하여 설립한 정부'라 되어 있다. 쉽게 말하면 '민주정'이다. 다른 영영 사전을 더 찾아 보았는데, democracy를 '~주의', (-ism)로 정의하는 곳은 거의 없다.
공산주의는 Communism, 자본주의는 Capitalism, 자유주의는 Liberalism, 낭만주의는 Romanticism이다. 근데 왜 민주주의는 democratism이라는 말을 안 쓰고, democracy라고 하는가?
애초에 democracy는 민주정(민주체제)으로 번역했어야 옳았다.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단어에는 democratism이 더 적절한 대칭어이다. democratism을 사상적 기반으로 해서 국민에 의해 구현된 체제가 democracy이다.
생각과 실체는 다른 것이다. 주의(ism)는 생각이고, 체제(cracy)는 내가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실체이다.
오래되어서 이젠 어색하지도 않은 이 오역에 대해서, 나의 아마추어적 해석은 이러하다. 'democracy'는 '주의'로서는 먼저 왔지만, 실질적으로 구현된 '체제'로서는 매우 더디 왔다.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여야 한다는 데에는 과거의 독재자나 민중들이나 별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 정말 민주정이 성립했느냐에 대해서는 위정자와 민중들의 관점이 전혀 달랐다. 그래서 Democracy를 '민주정'으로 번역하는 데에는 불편한 저항감이 있었을 것 같다. 생각과 실체가 불일치하는 시대에, '주의'와 '체제'를 굳이 구분짓지 않고, '모호함'으로로 남겨두려는 바램도 있지 않았을까?
한국 민중이 원했던 것은 사조로서의 민주주의(ism)가 아니라 실질적인 민주정이었다. (cracy)
60~80년대의 민주투사들은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웠다기보다는, 실질적인 ‘민주정 수립, 민주정 확립'을 위해 싸웠다고 봐야 한다.
Universal Design운동이 있었다. 장애-비장애인에게 정보나 사물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 권리를 제공하자는 개념이었다. (Universalism, Universal Design)
이를 잘 구현한 것이 애플 아이폰이다.
나는 유튜브에서 시각 장애인이 애플 아이폰을 가지고, 인터넷 토론도 하고, 단체사진 및 셀카 촬영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아이폰을 가지고 뭔갈 몰입해서 할 때는,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걸 잊는다고 했다. 난 제품력에 대해서 그토록 강한 선언을 들은 적이 없다.
애플은 보편적 디자인을 가미해서 아이폰을 몇 대 더 팔았을까? 저 회사는 시각장애인 몇 명에게 전화기 몇 대를 더 팔아서 개발비와 UX 디자인 비용을 완전 뽕 뽑으려 했을까? 나는 그 유튜브를 보면서, 어떤 제품에 남을 매료시킬 만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 제품에는 또 다른 영역에서, 아직 들려지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Democratism이 Democracy로 육화(Incarnate)되는 데에는, 짧게는 50년, 길게는 수 백 년이 걸린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 진행형이다.
우리 주변에도 다양한 '~이즘', '~주의'가 있다. 고객중심주의, 피해자 중심주의, 당사자 우선주의 등등... 이들은 ism인가? 아니면 실체적인 cracy로 구현되고 있는가?
진짜 중요한 것, 진짜 실력은, 머릿속의 ‘ism’을, 피부로 체감하고 코로 호흡하는 'cracy'로 발현해 낼 수 있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