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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Jan 12. 2019

AM 02:50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를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곡은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가사엔 사랑에 실패한 주인공이 자정이 넘은 시간에 공원을 뛰어다니는 내용의 구절이 나온다. 나 역시 그럴 때가 있었다. 가사의 주인공처럼 연애가 끝났을 때, 그리고 면접을 본 회사에서 불합격 문자가 날아왔을 때마다 나는 정신없이 자정의 공원을 내달렸다. 소리 한 번 크게 지르고 싶어도 벽 하나를 놓고 살아가는 아파트에선 그조차도 민폐였다. 


나 역시 이웃에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할 입장이었으므로 그 노래는 정확히 내 얘기와 같았다. 몸에 새겨진 경험 때문인지 노래 속 가사를 읽다보면 언제나 주인공이 숨이 차게 달렸을 순간의 마음이 몸으로 느껴졌다. 과거에서부터 오는 후회와, 그러지 말았다면 하는 가정과, 내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찾아올 아침에 대한 두려움들, 토하고 싶어도 끝내 위장 어딘가에 얹혀 나오지 않는 울화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우리에게는 밝은 내일이 기다린다'거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는 말들을 증오했다. 해가 떠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불행과 상관없이 해는 뜰 것이었다. 만약 그 태양이 정말 희망을 뜻한다면, 그건 분명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일 터였다.


네 번째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인디 레이블의 홍보팀 채용 이력서를 냈는데 덜컥 면접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사흘 뒤 2인 1조로 면접을 봤다. 나는 대기업에서 비서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여성 지원자와 한 조가 됐다. 회사 대표는 자신들의 레이블에 대한 이미지와 한계, 해결책을 농담을 섞어가며 물었다. 예전에도 원고 청탁을 받고 다른 레이블의 밴드들과 인터뷰한 경험이 적지 않았기에 자신 있었다. 나는 최근 폐업한 헤비메탈 레이블과 설립한 지 반세기가 지난 미국 재즈 레이블의 예를 들며 비교했다. 요는 잘하는 것을 잘하는 게 일단 중요하다는 것. 대표의 표정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 옆 지원자는 버스킹을 더 자주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는 미간을 찡그리며 야외에서 사운드를 뽑아내는 게 기술적으로 어려워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대답했다. 밴드 음악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할 제약이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남의 실패에 기분이 좋아지는 상황이 싫었지만, 어차피 지나야 할 인생의 과정이라면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둘의 대답을 들은 뒤 대표는 마치 빈틈을 봤다는 듯 옆 지원자에게 "남자친구 있어요? 결혼은?" 하며 물었다. 그녀는 남자친구는 있지만 결혼 생각은 없다고 했다. 대표는 거기에서 물러서지 않고 "결혼하면 애는 빨리 낳을 생각인가요?"라며 물고 늘어졌다. 자신들은 출산 휴가를 줄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게 그런 질문을 던진 이유였다. 그녀는 다시 결혼 생각은 없으며 애는 30대 중반이 되면 생각해 볼 문제라 지금은 전혀 머릿속에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게 대체 뭔 짓인가'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그녀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질문에 답했다. 손목에 힘줄이 돋아난 걸 보지 않았다면 그녀가 잠시 '욱' 했다는 걸 전혀 모를 뻔했다. 지금 내가 그런 걸 신경 쓸 처지가 못 된다는 걸 바로 다음 질문이 깨우쳐줬다. "지금 신입으로 들어오면 선배들보다 나이가 많을 텐데, 지금까지 뭐 했어요?"라는 질문이 들어왔으니까. 나는 그녀처럼 흔들림 없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게 대표가 내게 건넨 마지막 질문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그녀와 합정역 앞 버스정류장까지 동행했다. 나는 면접자 면전에다 결혼과 가족계획을 물어보는 회사가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다고 했다. 그녀는 "저 정도면 차라리 솔직하다고 봐야죠." 라며 덤덤히 넘겼다. 그녀는 버스를 타고 간다고 했다. 나는 지하철을 타야 했다. 헤어지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그럼 이제 뭐 하세요?"라고 물었다. 실수였다. 자소서를 새로 쓰고, 이력서를 여기저기 찔러 넣다가 '그 다음은?'을 늘 물어야 하는 게 구직자의 일상이니까. 그녀가 비정규직이었으며 이번에 계약이 끝나고 새 직장을 구한다는 사실을 면접에서 말한 게 뒤늦게 떠올랐다. 그렇게 제대로 수습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졌다. 남은 시간 나는 뭘 해야 할까. 해가 질 때까지의 삶을 버티는 게 매일의 숙제였다. 이력서를 더 보낼 곳이 남아 있나 생각하며 플랫폼 앞에 서 있는데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이 붙어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그때만큼은 그 시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잎이 떨어진다. 멀리서부터 떨어진다.

하늘의 먼 정원이 시들었는가

거부의 몸짓으로 잎이 떨어진다.


그리고 밤에는 무거운 지구가 떨어진다

모든 별에서 고독 속으로


우리 모두가 떨어진다. 여기 이 손이 떨어진다.

네 다른 것들을 보라. 모두가 떨어진다.


그런데 이 추락을 한없이 다정하게

안아주고 있다, 누군가가.*


* 독일문화원 번역


릴케의 말대로 밤이, 어둠이 그 모든 추락을 품어줬으므로 나는 잠에서 깨면 늘 해가 지기만을 원했다. 자정이 지난 밤에는 그 누구도 나의 현재, 나의 미래, 나의 실패에 대해 묻지 않았으니까. 오직 해가 진 뒤의 어둠만이 주어진 일과를 견딜 수 있게끔 해주었다. 자기소개서를 쓰다 졸고 나면 다시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럴 때면 늘 겁도 없이 새벽 한 시의 공원을 내달렸다. 그때마다 공원엔 무슨 이유에선지 술에 취해 우는 이들이, 한바탕 싸워 흐느끼는 연인들이 어김없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내게도 슬픔을 숨길 공간은 마땅해 보이지 않았다. 도시의 조명과 폐쇄회로 TV는 언제라도 늘 타인이 시야에 들어올 수 있게 설계돼 있었다. 게다가 때는 하지가 가까워오는 6월이었다. 서너 시간 뒤면 누구의 뜻도 묻지 않은 채 잔인하게 날이 밝아올 것이었다.


상처가 가득한 나날들 속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정말 희망일까? 정말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모든 희망을 빛으로만 규정할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때도 지금도 나에게 지는 해는 희망이다. 뜨는 해는 두려움이다. 모두가 그렇듯, 나 역시 상처라고 말할 수 있는 일들과 시기들이 있기에 이제야 조심스레 말할 수 있다. 그 수많은 아픔 속에서도 우리가 기어이 살아갈 수 있는 건 모두 해가 진 뒤의 세계 때문이라고. 릴케의 시처럼 밤이 나와 당신의 추락을 말없이 받아줬기 때문이라고. 당신도 나와 같다면, 이 글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몇 시간 뒤의 아침을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 여기엔 밤과 어둠만이 있고 당신을 괴롭힐 태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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