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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Jan 12. 2019

AM 00:07

"조만간 네 이름 바꾸기로 했다. “               


휴일에 점을 보고 온 엄마가 내게 말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엄마의 성격상, 그 말은 이미 무속인에게 이름을 받아 왔다는 뜻이었다. 아니, 엄마! 이름을 바꾼다니! 미신을 싫어하는 아버지가 이 상황을 알고 있는지 물으려는 찰나에 엄마가 "승환"이라며 먼저 대못을 박았다. 지금 이름에는 허망살이 있어 하는 일마다 발목이 잡히는데, 이 이름을 쓰면 공력이 새 나가지 않아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무속인이 말했단다. 얘기를 듣고 잠시 오승환과 이승환을 떠올렸다. 그럼 박승환은 뭐로 성공하지? 나이 서른에 야구와 로큰롤로 성공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어떻게 잘 될까 생각하니 도무지 떠오르는 게 없었다. 무색무취, 무존재. 그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었으니까. 이름 하나 바꾼다고 내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올 리 없었다.          


나는 행정 처리의 번거로움과 핸드폰 본인인증의 어려움을 이유로 엄마를 설득했다. 엄마는 생각보다 완고했다. 오히려 집안에 개명한 사람이 둘이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나의 유난함을 지적했다. 나는 모든 게 이름대로 될 것 같으면 집 근처 황제짬뽕에선 왜 그렇게 거지 같은 맛이 나겠느냐, 사람은 겉보다 속이 실해야 한다며 맞받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엄마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는 그로부터 한 달 여의 시간이 걸렸다. 이것도 사실 나의 말에 수긍했다기보다 다시 찾아간 점집에서 무속인이 '이름만 불러 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운이 온다'라고 얘기해줬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집안에선 ‘승환’으로 통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말하던 아버지와 동생조차 지금은 나를 바뀐 이름으로 부른다.               


사실 이런 때가 올 줄은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사람이 돼가면서 내 인생은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어쩌면 이제까지의 내 인생이 실패였음을 가족들에게 확인받는 순간을, 구직활동을 하는 내내 은연중에 떠올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막상 그 순간이 찾아오니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보다 답답한 건 미신에 기대서라도 자식의 운을 바꿔보려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이미 이름을 바꾼 사촌 형의 인생에 큰 변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엄마의 믿음은 꽤나 확고했다. 한때, 나는 엄마의 그런 믿음이 어리석어 보였다.           

    

나를 향한 엄마의 믿음은 늘 그랬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전교 214등이 적힌 성적표를 가져왔을 때도 ‘다음엔 더 잘 될 거다’라며 조그만 부적을 손에 쥐어 줬고, 결국 전혀 원하지 않는 곳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됐을 때도 ‘원래 큰 그릇은 늦게 된다’며 밑반찬을 싸줬다. 나는 엄마와 함께하면서 단 한 번도 기대치에 부응한 삶을 살아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어떤 것도 엄마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현재의 내 삶을 이름을 바꿈으로써 또 한 번 믿어보려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믿음이 영원히 끝나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자신의 기대치대로 따라 준 게 하나도 없는 인생을 향해 어떻게 이런 믿음이 가능할까. 그러다 얼마 전 SNS를 하다 지인의 타임라인에서 이 구절을 읽었다.            

    

믿음은 불확실성에 근거한다.              

  

그가 어떤 맥락으로 이 구절이 들어간 글을 썼는지는 시간이 흘러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위의 구절만이 살아 내 머릿속에 남았다. 그 말이 믿음에 관한 정의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증명된 사실은 우리의 믿음과는 상관없다. 우리가 믿지 않아도 사실은 사실로서 존재하니까. 사실에 따라서만 사고한다면 이를 믿음이라 부르는 건 맞지 않다. 애초에 믿음은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으니까. 논리적인 사고로 내린 결론이라면 여기엔 판단이란 말이 더 걸맞다. 그러니 '나는 오직 증명된 사실만을 믿는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나는 오직 증명된 사실만으로 판단한다'라고 말해야 한다.         

      

믿음은 이성의 영역이 아니기에 때로 다른 이들의 이해를 넘어선다. 만약 당신이 불확실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음에도 끝내 누군가를 믿으려 한다면 더더욱. 어쩌면 그것을 사랑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상대의 말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절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끝내 속는 쪽을 택하고 만다면, 그건 믿음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할 테니까. 그런 믿음은 곧 타인에게 오해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오해다. 끝내 타인을 이해시키지 못할 것이므로 이는 또한 대책 없는 일이다. 네가 그 나이 먹고 뭘 할 수 있겠냐는 주변 사람들의 '판단'에도 여전히 지금보다는 잘 되리라 믿어주는 엄마처럼. 엄마가 나를 길러낸 힘이 저 대책 없음에서 나왔다 생각하면 나는 이따금 아득하다. 나 또한 여전히 타인의 입장에서 엄마의 믿음을 더듬어 볼 뿐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한 달 전, 한밤 중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자신의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었다. 그간 중요한 시험에 연거푸 떨어진 게 이유 같다고 했다. 사실 메시지가 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그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 한 명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 한강변에 국화꽃을 놓고 온 적이 있었다. 그들이 겪은 절망의 크기가 어떤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 절망을 통해 그려볼 자신의 미래가 얼마나 어두운 것일지는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도, 내 친구도 그랬으니까. 면접에 떨어질 때마다 서로 전화기를 붙잡고 살아서 뭐하냐며 삶을 자조하곤 했으니까. 아마 당시의 좌절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판단하려 들었다면, 우리 둘 다 그들을 따라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친구도 떠나지 않았다. 우리 모두 아무것도 되지 못한 상태였지만 “우리가 아무리 모자라도 천년만년 병신 같겠냐”며 지금까지 대단할 것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 대책 없는 믿음이 우리를 이제까지 붙잡아두었다. 그 덕에 스스로를 향한 대책 없는 확신이야말로 각자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견디게 해 주는 힘이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당신도, 나도, 앞으로도 그 대책 없는 믿음만큼은 놓지 않기를. 이제까지 당신을 믿어준 대책 없는 이들 때문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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