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언론사에서 대학생 인턴을 할 때의 일이다. 당시 한창 이슈가 되었던 대학 내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를 취재하러 갔었다. 2011년 1월 환경미화와 경비업무를 담당하던 노동자들이 백여 명이 순식간에 해고됐다. 노동자들은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며 본관을 점령하고 열흘째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현장 취재였다. 실제로 가보니 생각 이상으로 아수라장이었다. 본교 학생들이 둘로 갈려 찬반 성명을 내고, 여러 언론사 현직 기자들이 농성장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취재하고, 학교 측에서 매일 보도자료를 냈다. 하루에도 여러 개의 사실들이 쏟아져 나왔다. 원청과 용역업체, 그리고 파견업체 간에 책임회피에 대해 써야 할지, 새로운 사실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그 많은 사실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벅찼다. 모든 게 생전 처음이었다. 시간이 지나니 내가 취재한 게 모두 정확한 사실인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나도 내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오직 농성 중인 어머니들만이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믿어줬다. 손에 들고 있던 근로계약서를 가리키며 '좀 보여주시면 안 되냐' 말씀드리자 “이거? 아들이 아무한테나 보여주지 말랬는데”라면서 그냥 주셨다. 조금 당황했다. 아무한테나 보여주지 말라는 말 치고는 너무 덥석 주셨다. 그 외에도 물어보는 건 다 대답해 주셨다. 노동 여건은 어땠는지. 자식들은 지금 상황을 알고 있는지. 뉴스로서의 가치는 하나도 없었지만, 그냥 닥치는 대로 받아 적었다.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나쁜 머리에 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들뿐이었다.
때문에 대학교와 노조를 둘러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지는 못해도 어머니들의 삶에 대해서는 남김없이 다 이해할 수 있었다. 휴일 없이 오전 7시 출근에 오후 10시 퇴근이 매일 반복되는 고강도의 노동에도 월급 수준은 터무니없었다는 것. 그럼에도 별도의 휴식처조차 마련해주지 않았다는 것. 그런 탓에 언제나 두 평 남짓한 지하 임시거처에 쪼그려 앉아 식사를 해결해야만 했다는 것도. 그마저도 학생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된다며 '학교 건물 밖에 나가서 먹어라'라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어야만 했단다. 이미 매체에 나온 사실들이었지만 현장에서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니 울림이 컸다.
나라면 진절머리가 나서 떠났을 거라고 맞장구를 치니 어머니들은 “그래도 이 일로 자식들 대학도 보내고 학비도 댔다.”면서 “다 큰 자식들에게 짐 되기 싫어. 다 필요 없고 일만 시켜줬으면 좋겠어.”라고 얘기했다. 당장 손주 생일에 줄 용돈이 걱정이라는 어머니도 계셨다. 그다음은 어머니들의 깨알 같은 손주 자랑. 무려 영하 15도의 한파였고, 학교 측이 본관으로 통하는 모든 온수와 난방을 차단한 상태였다. 건물 밖에선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교대로 채증 겸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손주 사진을 보면 웃음이 날 수 있구나. 주책맞게 목이 멨다. 어머니들에게 티가 날까 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결국 여기저기 구르고 굴렀지만 내 무능력 탓에 기사는 단 한 줄도 나가지 못했다. 48시간을 상주하면서 적은 현장의 기록은 고스란히 노트와 머릿속에만 남게 됐다. 남은 건 이틀 동안 감지 못해 떡진 머리와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양말. 서러워서 눈물이 맺힌 내게 어떤 어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아이구~ 고운 얼굴 그렇게 구겨 쓰면 못써. 못나 보이게”
“아, 기사가 한 줄도 나가지 못했어요. 다른 동기들은 다들 자기 기사 올리느라 바쁜데.”
“지나 보면 아무 일도 아냐. 우리도 사는데 뭘, 빨리 와서 밥 먹어. 김치찌개 해놨어.”
그렇게 혼자 구석에서 끅끅대며 김치찌개를 먹었다. 서러운 와중에도 김치찌개는 맛있다는 사실이 쪽팔렸다.
저녁을 어설프게 때운 날, 가족들이 잘 때 몰래 나와 엄마가 만든 김치찌개 몇 수저를 덜어 밥에 비벼먹고 잘 때가 있다. 추운 날씨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다. 그 때도 지금처럼 추웠는데. 요즘도 그곳에서 일하고 계시려나. 그렇다면 두 번 다시 냉돌 바닥에서 열흘 가까이 농성하는 일이 없길.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아 손주들에게 예쁜 선물 많이 사주시길. 그리고 부디 따뜻한 곳에서 식사 잘 드시며 지내시길. 일 할 때 먹는 밥 한 끼는 모두에게 소중하니까. 굳이 권리라는 말을 앞에 달지 않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