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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Nov 08. 2019

곱창집 부부와 사랑의 선언

채용사이트에서 주관한 설문조사였던가. 직장인들이 가장 기피하는 회사를 물었는데 압도적인 1위가 소규모 가족기업이었다. 왜 최악인지는 이유를 따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기업일 테니 직급과 체계가 있겠지만, 구성원이 가족인 이상 그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을 테니까. 부장인 아들과 대표인 사장이 대판 싸우는 풍경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면 직원들은 그 아래서 어떻게 처세해야 할까. 답이 있을 리가.


하물며 기업이 그런데 가족들 서넛이 달라붙어 운영하는 식당이 오죽할까.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식당들은 위에서 지적을 하면 아래에서 묵묵히 받아들이는 구조가 아니다. “그릇에 물이 묻어 있으면 음식 맛이 변한다니까!”라는 지적이 들어오면 “그러는 당신은 빈 박스를 그런 식으로 쌓아놔서 사람을 고생시켜요?” 하는 식이다. 고용된 주방 보조들은 눈치를 보느라 혼란스럽다. 다른 게 지옥일까. 회사가 작을수록, 사업에 달라붙은 식구들이 많을수록 지옥은 더 가혹해진다. “혹시 이 가게 가족들이 하시나요?”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오는 분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 집 근처의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켜 먹고 있을 때도 그랬다. 50대쯤 되는 부부 두 분이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곳이다. 한참 밥을 먹는데 주방 한편에서 “아니, 재료 손질이 아직도 안 돼 있으면 어쩌라는 거야!”라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의 목소리였다. 소리가 얼마나 큰지 뉴스에 나오는 기자의 리포트가 묻혀버릴 정도였다. 곧이어 들려오는 사모님의 반격. “아니, 내가 놀았어? 눈이 있으면 좀 봐! 할 게 얼마나 많은지!” 아, 너무 익숙한 이 광경. '그래도 홀까지 목소리가 들리면 곤란한데. 설마 우리도 그런가?' 생각하며 남은 볶음밥을 먹었다. 애초에 싸우지 말자는 다짐 같은 건 무의미하다. 아니 그냥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점잖게 싸우는 법을 연구하는 게 더 생산적이다.     


지금은 돈가스를 튀기지만 예전에는 피자집을 했다. 부부 관계가 흔들릴 수도 있는 많은 위기들이 피자집 시절에 벌어졌다. 하나를 팔더라도 잘 만들어야 한다는 아버지와 하나라도 더 팔려는 엄마의 가치관 차이가 주된 원인이었다. 여기에 군부대의 단체 배달이나, 오토바이 모는 아이들이 사고라도 치는 날에는 피자 오븐보다 더 뜨거운 지옥이 가게를 둘러쌌다(이 모든 재앙이 한꺼번에 겹친 날도 많다). 거의 매일같이. 두 사람은 오로지 애정이 아닌 생활의 문제로만 30년 가까이 싸워온 셈이다. 내가 가난에 대한 특별한 트라우마 없이 살 수 있었던 건 그 두 사람의 전투적인 일상 덕분이었다.   


언젠가 엄마와 그 시절 일들에 대에 애기한 적이 있었다. 나라면 진즉에 갈라섰다고 말했던가. 엄마는 “새끼들을 생각하면 절대 그렇게 못하지”라고 말했다. “너도 결혼하면 안다”라는 말을 끝에 붙이면서. 그 마음이 어떤 건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아 지금까지 미혼이고 앞으로도 미혼으로 살고자 한다. 사실 결혼을 안 해도 짐작 가는 바는 있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두 사람에게 아이는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일종의 지점이라고 했다. 두 사람에게 위기가 와도 그 지점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서로 사랑에 빠지기 이전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아이 때문에 같이 산다'는 말과는 다르다. 그는 결혼과 출산을 사랑의 무덤이라고 전제하지 않았으니까. 대신 그는 그 지점들을 일종의 선언이라고 정의한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선언.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 옆에 있겠다는 선언.      


가끔 그보다 조금 더 참신한 선언을 만날 때가 있다. 집 근처 시장 곱창집에서. 시장은 9시면 다들 문을 닫는데, 그 집만 10시까지 장사를 한다. 어느 날인가 버스를 조금 빨리 타 보려고 시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다 돼지곱창에 당면을 얹어 볶고 있는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냄새를 맡는 순간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다. 그게 그 가게와의 첫 만남이었다. 정황상 마지막 주문인 게 분명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곱창볶음 1인분을 급히 주문했다. 사장님이 곱창을 볶는 동안 가게의 모습을 훑어봤다. '오오, 구멍 나기 직전인 양푼과 국자를 보니 꽤 오래 장사를 하신 모양이군.' 그럼에도 환풍기와 벽면이 말끔한 걸 보니 주방 청소를 열심히 하는 집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가게 간판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간판에는 젊은 시절 사장님과 사모님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다. 연애 시절인지 신혼 무렵인지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저 80년대식 더벅머리를 한 사장님과 부메랑 파마를 한 사모님에게 시선이 갈 뿐. 두 분도 일할 때 싸우실까. 같이 살아온 내내?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여느 집의 싸움과는 좀 다르리라는 걸 그 간판을 보면서 짐작할 수 있었다. 더벅머리 장발과 부메랑 파마가 빛을 내던 시절처럼 언제나 함께 하겠다는 선언. 고되든 즐겁든 같이 겪고 같이 누리겠다는 선언. 그 선언이 마감이 임박한 시장을 홀로 밝히고 있었다. 그 가게의 간판보다 단호하고 센스 있는 사랑의 선언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곱창 맛이 최고인 건 말할 것도 없고.                                    


*알랭 바디우, (『사랑예찬』, 길, 2010) 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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