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영국의 미쉐린 3스타 식당 ‘워터사이드인(Waterside Inn)’에서 고객들의 음식 사진 촬영을 금지한 적이 있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음식의 맛이 변한다는 게 이유였다. 다분히 문제가 될 만한 조치지만 심정적으로 이해는 간다. 어떤 음식이든 막 나왔을 때가 제일 맛있으니까. 하지만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식사를 하는 동안 누군가는 SNS에서 ‘좋아요’를 누를 테고, 또 다른 누군가와 일상적인 메시지를 주고받을 것이다. 업무상 중요한 전화가 올 지도 모르고. 식당의 참된 뜻을 오롯이 관철하려면 손님들의 스마트폰을 압수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콧대가 높은 식당이라도 거기까진 불가능하다. 결국 이건 시대의 흐름이라는 얘기.
한 접시에 20만 원이 넘는 식당이 저런데 우리 같은 동네 밥집은 오죽할까. 홀로 오는 손님들의 절대다수는 식사 중에 핸드폰으로 뭔가를 한다. 드라마를 볼 때도 있고, 누군가와 메시지를 보내다가 눈에 띄는 기사에 댓글을 달기도 한다. 한 손으로 수저를 뜨고 다른 손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분도 봤다. 뭐, 사실 나라고 다른 건 아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왠지 눈 둘 곳이 없어지는 기분이랄까. 뭔가 다른 것들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만 안도감이 든다. 스마트폰이 없어지면 식당에는 나와 주인, 그리고 다른 손님뿐이니까. 그 순간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수저를 뜨는 건 뭔가 새삼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들 밥을 먹으며 스마트폰을 쳐다보게 되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혼밥’이 일상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신적으로는 혼자 하는 식사가 다들 어색한 것이다. 내가 혼자 온 거지 그 식당에 나 홀로 있는 건 아니므로. 혼밥을 콘셉트로 내세운 라멘집에서 나는 그 심증을 굳혔다. 파티션이 쳐진 식탁에서 라멘을 먹는 손님들 모두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으니까. 이 도시에서 우리는 결코 혼자일 수 없다. 타인과의 어색함은 이미 오래전 일상이 됐다. 스마트폰은 그 어색함에 적절한 방패가 되어준다.
그러나 제대로 맛을 느끼려면 고독해야 한다. 그 고독을 전제로 식탁 앞의 음식과 마주해야 한다. 어색하다고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는 만큼 만든 이의 의도와 정성은 희미해진다. <고독한 미식가>라는 드라마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핵심을 찌른다. 내용도 마찬가지. 주인공인 이노가시라 고로는 식사를 하는 내내 그 누구와도 메시지 한 통 주고받지 않는다. 오로지 음식의 맛을 생각할 뿐이다.
이는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과도 맥이 닿는다. 스님은 자신의 책 『틱낫한의 먹기 명상 HOW TO EAT』(한빛비즈, 2018)에서 단지 음식만을 알아차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행위를 식사에서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색함을 버리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순간, 존재를 느끼기 위해 오감이 깨어난다. 불가에서는 이를 현존(現存)이라고 칭한다. 현존의 상태에선 사과 한 조각을 먹을 때도 나무가 맞았던 비와 햇살을 생각할 수 있다. 고로가 도쿄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식당에서 라그만을 먹으며 “내 입은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유목민이다”라고 말하는 장면과 포개진다. 그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뿐이지만 그는 유목민의 자유로움에 한껏 빠져든다. 그런 의미에서 고로의 삶은 현존 그 자체랄까.
가족들이 여행을 떠나고 홀로 남은 저녁. 그 가르침을 따라 밥을 먹어보기로 했다. 티브이도 스마트폰도 켜지 않은 채 냉장고에서 시금치나물과 통마늘장아찌를 꺼냈다. 수저를 들어 밥을 한 숟갈 먹고 시금치나물을 씹었다. 음, 시금치가 이런 맛이었군. 시금치의 흙내와 통마늘의 아린 향이 그날따라 새롭게 다가왔다. 지렁이가 꾸물대는 땅의 생명력을 음미하는 경지까지 도달하진 않았지만, 분명 내가 평소에 먹던 반찬의 맛과는 조금 달랐다. 받아들이는 자의 자세에 따라 음식의 맛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걸까. 단출하지만 훌륭한 식사였다. 밥 먹을 때 웹툰 보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진리였음을 깨달은 건 덤. 이쯤에서 질문!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먹는 시금치나물. 정신없이 사진을 찍느라 식어버린 미쉐린 3스타 식당의 음식. 과연 뭐가 더 훌륭할까. 미쉐린 식당 문턱에도 못 가본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현존이 최고의 밥도둑이라는 사실만큼은 이제 확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