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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Nov 08. 2019

떠날 용기가 쌓이는 미고랭

잠시 한가한 시간, 애인에게 메시지가 왔다. “여행 갈 거야?” “응” “그러면 지금 바로 티켓 알아봐야 해” 나는 ‘알았어’ 하고 얼버무린다. 애인도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다. 어차피 알아보지 않을 테니까. KBS에서 하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나온 인도네시아 트라왕간 해변에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무렵이었다. 쪽빛 바다. 주먹보다 큰 망고스틴.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금지된 해변. 얼마나 예쁘고 조용할까. 하지만 그저 말뿐이다. 늘 어딘가에 가고 싶지만 실행으로 옮긴 적은 많지 않다. 그저 말뿐인 바람을 왜 얘기하는지는 나조차도 모른다. 말 그대로 아닐까. ‘가고 싶어. 정말 가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가고 싶을 따름이라고.’ “뭐 어쩌라고.” 당연히 애인의 반응이 시큰둥할 수밖에.      


경험상 걱정이 많은 이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맞닥뜨릴 불확실성이 싫거나, 그냥 겁이 많거나. 나는 둘 다다. 여권이라도 잃어버리면 어쩌지? 영어도 간신히 하는데 숙소 체크인은 어쩌고?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예전에 신주쿠 역 안에서 두 시간을 넘게 헤맨 적이 있다) 휴대폰부터 동전 한 닢까지 바구니에 탈탈 털어 넣고 불친절한 공항 직원들 앞을 지나가야 하는 것도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인천공항에서 집 까지 돌아와야 하는 그 피곤한 과정은 어떤가. 인도나 터키를 거침없이 오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고도 놀랍다. 그런 에너지와 용기가 내게는 없다. 이미 식당 일을 하면서 온갖 변수에 노출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탓에 예측 불가능한 여정에 굳이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여행만 꿈꾸다 이내 마음을 접을 때면 늘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요리스 카를 위스망스(Joris Karl Huysmans)의 소설 <거꾸로>에 나오는 데제생트 공작이다. 어느 날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읽다 런던을 동경하게 된 그는 생전 처음으로 여행을 시도한다. 파리에 도착한 데제생트는 암스테르담 거리의 영국 선술집으로 간다. 들어가자마자 그는 그 술집의 모습에 매료된다. 어두컴컴한 조명과 자욱한 연기, 큰 치아와 단단한 체구의 사람들. 디킨스가 묘사한 영국식 주점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자리에 앉은 데제생트는 쇠꼬리 수프, 훈제 대구, 구운 쇠고기, 감자 한 그릇, 맥주 2파인튼, 스틸턴 치즈 한 덩어리를 주문한다. (저 병약한 양반이 시킨 메뉴의 가짓수를 보면 그가 얼마나 들떠있는지 알 수 있다.)      


이후 식사를 끝낸 그는 여행의 피곤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 “역까지 달려가야 하고, 짐꾼을 차지하려 다투어야 하고, 기차에 올라타야 하고, 익숙하지 않은 침대에 누워야 하고, 줄을 서야 하고…….”* 뒤이어 이어지는 자기 정당화. ‘런던의 모든 정취가 이 가게 안에 다 있는데, 굳이 런던을 가야 해? 그렇다면 집에 가야지!’ 해서 데제생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거기가 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게 용기란 순간적으로 용솟음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쌓이는 것이므로. 쌓이고 쌓인 용기는 언젠가 자신의 그릇을 벗어나 주워 담지 못할 만큼 흘러넘친다. 그 이후의 벌어질 결정은 자신이 아니라 용기가 한다. 데제생트 공작이 언젠가는 도버 해협을 건너리라 믿는 건 그래서다. 한 번 파리에 도착한 이상 두 번 가지 말란 법은 없을 테고. 여러 번 파리를 가다 보면 언젠가는 도버 해협 앞 까지는 가게 될 테고. 그렇게 슬금슬금 나가다 보면 어느새 바다까지 건너갈 용기가 마음속에 쌓여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온 컵라면이 집에 들어왔다. 해외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 동생이 발리에서 사 온 것이다. 포장지에는 커다랗게 알파벳으로 미고랭이라 쓰여 있었다. 인도네시아 볶음밥 나시고랭의 면 버전이다. 밑에 쓰인 ‘바소 아얌(Baso ayam)’이 무슨 의미인지 통역 앱을 돌려 보니 ‘닭고기’라고 나온다. 포장을 뜯어보니 파우더 수프 하나와 조미유, 페이스트 형태의 양념장이 들어 있었다. 만드는 법은 한국식 짜장 라면과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에 조미유를 뿌리는 것 까지 똑같았다. 맛은? 영락없는 사천 짜장이다. 대신 인도네시아 컵라면이 훨씬 더 맵다. 한국에서 시판된 짜장라면 중에 이만큼 매운 제품을 아직 보지 못했다. 매운 걸 좋아하는 나는 이 라면이 마음에 들었다.      


요즘은 집에 와 미고랭 컵라면을 먹으며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보는 게 삶의 낙이다. 언젠가 나 역시 용기가 흘러넘쳐 일을 저지를 때가 올까. 통제받기를 거부한 용기가 어느 날 인도네시아행 티켓을 덜컥 사버리는 날이 올까. 현지에서 물 건너온 라면을 먹으면서 화면 속 환하게 웃는 발리 사람들을 보니, 어쨌거나 공항 까지는 갈 수 있을 것도 같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이레, 2004, 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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