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로 Jan 12. 2019

PM 10:42

고등학교 시절, 길을 지나다 커플들을 보면서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느끼곤 했다.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을까? 그러니까 그게 궁금한 이유는, 내게 고백이라는 행위가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다가와서였다. 고백은 어떻게 하지? 아는 것도 경험한 것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만화에서 본 것처럼 친구들에게 부탁해 교실 천장에 풍선을 달고 무릎을 꿇은 채 전교생들이 보는 앞에서 상대에게 반지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서점에서 사람들 눈치를 보며 연애서적 코너를 기웃거린 적도 있다. 꽤나  다양한 방법이 있었지만, 결국 핵심은 단둘이 차분하고 조용한 곳에서 하라는 것이었다. 차분하고 조용한 곳. 책들은 공원과 집 근처를 최적의 장소로 추천했다. 글로 연애를 배운다는 사실에 자신이 싫어지곤 했지만, 어쨌거나 나 같은 모태솔로가 사랑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방법이라곤 결국 글 밖에 없었다.


서점에서 연애서적을 읽으며 글로 연애를 배웠던 건 당연히 마음에 둔 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2년째 친구를 빙자한 채 가망도 없는 짝사랑을 이어가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월 말이었다. 보름 뒤면 그녀가 강화도의 기숙학원에 가기로 했기 때문에 그때가 아니면 고백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 둘이 있을 기회가 애초에 있을 리 없었으니 그저 머릿속에서 상상만 하고 있던 차에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는 한동안 보지 못할 테니 같이 만나서 밥이나 먹고 놀자며 편한 시간을 물었다. 며칠 뒤 우리는 늦은 오후 일산 주엽역에서 만나 매운 치킨버거를 먹고 문구점에서 필기도구를 샀다. 그녀는 나와 치킨버거를 먹으면서 유치원 때 자신을 못살게 굴던 선생님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꽤 오랜 시간을 그 선생님을 욕하는 데 썼는데, 그때 나는 조용하고 차분한 곳이 어딘지를 떠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녁 8시, 이제 그녀를 집으로 바래다 줄 시간이었다. 지금 걷고 있는 동선을 계산한 결과 내가 고백할 장소는 그녀의 집 앞 근린공원이었다. 기회는 단 한 번. 때마침 그녀를 집으로 바래다주기 위해선 근린공원을 반드시 지나가야만 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내 모든 것을 걸어야만 했다. 그녀가 갑자기 만화대여점으로 나를 데려가기 전까진 그랬다. 갑자기 만화가 보고 싶어 졌다며 <데스노트>와 <상남 2인조>를 빌리겠다는 것이었다. 만화 대여점은 근린공원으로부터 두 블록 떨어진 곳이어서, 그 곳에 들르는 순간, 이제껏 세워 놓은 계획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 속을 알 리 없는 그녀는 대여점 입구 벽에 붙어있는 영화 <레지던트 이블> 포스터를 보며 밀라 요보비치의 몸매를 찬양했다. 만화책을 빌리고 나서는 귤이 먹고 싶어졌다며 맞은 편 길가에 있는 마트로 들어갔다. 역시 근린공원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경로였다.


크나큰 좌절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 언제 만날지 기약이 없으니까. 내게 주어진 기회는 여기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아파트가 몇십 미터 남았을 때쯤 덜컥 말을 꺼냈다. "저기 나 할 말 있어." 그때 자전거가 지나갔다. 그냥 얌전히 지나가면 될 걸 따르릉 소리를 내며 달리는 통에 내 목소리는 허공에서 그대로 지워졌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집으로 향했다.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꾹 참고 다시 입을 뗐다. "저기…." 그순간 아이들이 학원 버스에서 단체로 내려 자기들이 사는 아파트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는 집 앞에 오기까지 자동차 경보기가 1분가량 울어댔고, 세탁소 아저씨가 드라이한 옷을 주렁주렁 매단 채 오토바이를 몰고 보도 한복판을 지나갔다.


결국 그날 고백은 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의 마음을 얻는 대신 자기 전 떠올릴 때마다 허공에 발길질을 하게 될 추잡한 기억 하나를 추가했다. 처참한 실패를 겪고 나서일까. 번화가를 누비는 이 수많은 커플들 모두가 조용하고 차분한 곳에서 서로의 마음을 털어놨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이들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고백을 했단 말인가. 마치 고백이라는 고유의 인사 문화를 가진 외국인들 같았다. 운을 떼는 건 고백을 하는 사람이지만 결국 그 말을 꺼내게끔 여지를 주는 건 상대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생각해보면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 상대와 애초에 그런 곳에 갈 일이 없는 게 당연한데, 그 당연한 일을 깨닫기까지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걸까. 뭐, 다른 이유가 있을리가. 그조차도 몸으로 겪어야 아는 내가 바보였던 거지.


며칠 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파트 뒤편 놀이터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남자가 여자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며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잠시 생각하다 남자의 손을 잡았다. 타인의 고백 순간을 날것으로 지켜본 적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보, 보려고 본 게 아니라 그냥 보여서 본 건데! 마치 관음증 변태라도 된 것만 같았다. 스스로가 한심해 애써 고개를 돌린 채 경보를 하듯 서둘러 걸었다. 그러고보니 여기도 조용하고 차분하구나. 빨리 집에 도착하려면 공원을 가로질러야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간신히 찾은 고백 장소였을지도 몰랐다. 


누군가에게 차분히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기에 이 도시는 너무 비좁은 게 아닌가. 


결국 그날은 공원을 빙 둘러 돌아갔다. 오지랖인 걸 알면서도 다른 누군가가 그들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았으면 하고 속으로 바랐다. 그날 밤 그들이 각자의 침대에 누워 서로 주고받을 메시지를 생각했다. 타인의 일에 기분이 흐뭇한 게 얼마만이었더라. 그렇게 자리에 누워 한동안을 뒤척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