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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Jan 12. 2019

PM 10:31

좋다고 느끼는 구절들을 이따금 노트에 적는다. 이를테면 시인 김소연의 <마음사전>에서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라는 구절이나 존 버거의 <A가 X에게>에서 주인공 아이다가 편지에 쓴 "완벽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같은 문장들.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적어 놓지 않으면 책 어느 부분에 원문이 있는지를 찾아낼 수 없다. 그런 답답함이 싫어 적기 시작한 게 어느새 습관이 됐다. 적어 놓은 문장들은 틈틈히 보며 즐긴다. 요즘 가장 많이 보는 구절은 스벤 린드크비스크가 쓴 <야만의 역사>(한겨레출판, 2003)란 책의 일부다. 내가 노트를 산 뒤 처음으로 적은 구절이다.


당신의 앞면은 계속 체면을 유지할 수 있다. 다른 부위는 아니더라도 얼굴은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마주볼 수 있다. 외로운 것은 당신의 목덜미이다.     

당신은 당신의 배를 감싸 안을 수 있고, 배를 웅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의 등은 언제나 혼자다. (123p)   


이 구절만 보면 꽤나 로맨틱한 소설의 일부 같지만, 그와는 반대로 유럽이 아프리카에서 자행한 학살의 역사를 더듬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사하라 사막을 일대를 여행하며 제국주의 시절 벌어진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학살의 기억들을 더듬어간다. 여기서 '나'의 사고는 두 갈래로 뻗어나간다. 하나는 19세기로, 다른 하나는 20세기로. 19세기로 향한 시선은 타 인종을 향한 학살을 정당화하는데 과학적 해석을 제공한 생물학자 조르주 퀴비에의 우생학이 주류 과학계에 등장하기까지의 맥락을 파해친다. 20세기로 향한 시선은 19세기에 등장한 우생학이 어떻게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인종청소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를 사료들을 통해 증명해낸다.      


그러니까 이 책의 목적은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도록 돕는 데 있다. 그러니 위 구절을 발견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식민지배를 고발하는 책에서 외로움을 묘사하는 문장이 들어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대학 시절 독서 스터디에서 처음 추천받아 읽은 책인데, 지금은 오직 저 구절 때문에 책을 처분하지 않고 보관 중이다. 책이 절판돼 새로 구할 수도 없을 뿐더러, 여전히 저 구절을 온전히 간직하고 싶다는 욕심이 책을 버려야겠다는 의지보다 강하다.      


노트에 적힌 그 구절을 볼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엄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내가 어디를 갈 때면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내 뒷모습을 바라봤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상병 정기휴가를 쓰고 부대로 복귀하는 날에도, 연락온 회사의 면접을 보러 가는 날에도 그랬다. 다 크고 나서는 늘 한결같은 그 모습에 괜히 눈물이 나서 끝까지 앞만 보고 간 적도 가끔 있었다. 그런 인사법은 내가 떠나는데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상대를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건 마치 '너를 끝내 울리게 만들어 주마'라는 결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돌이켜보면 외출할 때 엄마의 등을 본 적은 많지 않았다. 물론 그건 엄마의 등을 보는 게 싫어 내가 먼저 돌아섰기 때문이지만.       


그렇게 어릴때부터 받은 영향 때문인지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질 때 나는 절대 먼저 등을 돌리지 않는다. 상대가 그것을 부담스러워 할 것 같으면 어느정도 뒤돌아 간 다음에 떠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다. 의식적인 행동이라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습관이다. 연애 초반에 애인은 늘 그 모습이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자신은 작별 인사를 하면서 누군가를 끝까지 지켜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돌이켜보면 애인이 돌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낄 공허함이 왠지 안타깝게 느껴져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저 등을 봐주는 것만으로도 뭔가 위로가 되진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벤 린드크비스트의 말대로 모든 등에는 모든 외로움이 존재할 테니까.      


얼마 전에 일을 마치고 친한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헤어지는 길, 그날도 나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먼 발치에서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내게는 몇 없는 소중한 친구다. 그 역시 과거를 떠올려보면 내가 먼저 뒤돌아서는 모습은 기억에 많지 않을 것이다. 그를 보내고 난 뒤 나 또한 허기진 듯 외로움이 찾아왔다. 주제넘게도 그의 외로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 때, 오직 타인만이 내 등을 볼 수 있음을 떠올렸다. 각자의 뒷모습을 서로가 봐줄 때 외로움은 얼마나 줄어들 수 있을까? 돌아오는 길에 그들이 기억할 내 뒷모습에 대해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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