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로 Mar 06. 2021

피가 모자라? 그게 어때서!

피가 모자라? 그게 어때서! (Feat. 서태지와 아이들)      


고등학교 시절, 보습학원 수학 선생이 다가와서 내게 말을 건넸다. “너 헤비메탈 좋아한다며?”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으나, 굳이 취향을 숨길 필요는 없는 듯 해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표지에 커다란 물방울 사진이 담긴 책을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책의 제목은 『물은 답을 알고 있다』였다. 도대체 물이 뭘 안다는 걸까. 들어보니 전부 빤한 말들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 물방울은 동글동글 예쁘고 헤비메탈을 들려준 물방울은 갈가리 분해된다는 얘기. 그러면서 인간의 몸은 70%가 수분이기 때문에 들으면 몸에 좋지 않다며 내게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나는 반대로 물어봤다. “그럼 클래식을 들으면 몸 어디에 좋은데요?”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는지 “다 좋지, 정서에도 좋고 몸에도 좋고.” 말로 얼버무렸다. 클래식을 들은 사람들이 아닌 이들보다 키가 더 크다,라고 말한다면 살짝 혹했을 뻔도 한데, 그는 클래식이 몸 어디에 좋은지 끝내 설명하지 못했다. 설사 몸에 좋다 한들 메탈을 버리고 클래식을 듣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 학교란 억압의 공간이었으니까. 전국의 소년소녀들을 모두 한 곳에 몰아넣고 먹이고 때린 뒤 등급을 매겨 사회에 배출하는 게 학교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당연히 나는 거기서 길러지는 가축이고). 특별히 잘난 것 없이 평범했던 내가 타인과 자아를 열등감 없이 구분 지을 수 있던 건 순전히 헤비메탈을 듣는다는 조금 남다른 취향 때문이었다. 그런데 학원 선생의 말대로 헤비메탈을 버리고 클래식을 들어야만 한다면? 나는 나와 남을 구분 짓는 유일한 수단마저 잃게 되는 것이었다.    

  

걸어서 집에 가는 내내 그의 충고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일렉기타로 엉덩이를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돈 주고 다니는 학원에서조차 내 취향에 간섭을 받아야 하나? 메탈의 일렉기타 사운드는 쇠줄을 튕길 때 생긴 진동을 자기장으로 증폭시킨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소리는 그저 공기나 다른 매질이 진동할 때 생기는 현상일 뿐이고, 결정적으로 나는 일렉기타 소리를 소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몸에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여기서 나올 이유가 없다는 건 수학 포기자 문과생인 나도 안단 말이다! 문득 그의 전공이 뭔지 궁금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주장은 과학의 영역에서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복도에서 나를 만날 때마다 안부를 묻는 척 “요즘도 헤비메탈 듣니?”라고 물어보곤 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빈말로 “예예, 알겠습니다, 안 들을게요.”라고 하니 그다음 날에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올 생각이 없느냐는 문자가 날아왔다. 결국 이 모든 게 전도 때문이었단 말인가. 악마의 속삭임에 방황하던 어린양이 드디어 회개했다고 생각했을 학원 선생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애초에 전도를 할 거면 성경 말씀을 앞세워 해야지 근거도 없는 유사과학을 앞세우는 건 뭐고(나중에 모태신앙인 친구가 그 교회가 이단 종파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난 뒤 나는 한동안 큰 충격에 빠졌다). 다행히 이후로 그 선생을 다시 볼 일은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 학원을 관뒀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 이후에도 클래식을 듣는 일은 없었다.      


헤비메탈을 진심으로 악마의 음악이라 믿는 사람들이 그때는 종종 있었다. 그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앨범이 악마의 영향을 받은 거라고 믿었다.                


“피가 모자라 그거요? 그거 그냥 테이프 거꾸로 돌려서 나는 소리잖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잘 생각해봐. 그냥 테이프를 거꾸로 돌린 건데 피가 모자라!라는 소리가 난다는 게 말이야.”     


헌혈 참여 문의는 대한적십자사로. 대표번호 : (02) 3705-3705


뒤집은 음원에 특정한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집어넣고 <교실이데아>를 만든 게 사실이라면 단언컨대 서태지는 지구 최고의 천재였을 것이다. 아니, 그리고 피가 모자라가 왜? 그 가사가 별건가? ‘피가 모자라’가 뭐야, 헌혈 홍보 문구도 아니고. ‘너를 산 채로 토막 내겠다!’ ‘내 제단에 펄떡이는 심장을 바쳐라!’ 쯤은 돼야 하는 거 아닌가. 고작 그런 걸로 공포를 느끼다니. 같잖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음악이 악마의 영향을 받았다고 느낄 정도면 람슈타인이나 인플레임스의 음악을 듣는 나는 그에게 대체 무엇으로 보였을까.          

  

몇 년 전, 뮤지션 K를 인터뷰할 때 헤비메탈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주장한 수학 선생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가 손바닥을 치며 깔깔댔다. 꽤 오랜 시간을 웃고도 어이가 없다는 듯 계속 피식거렸다.       


 “아니, 그러면 화이트노이즈 틀어주면 모두 공부할 때 집중 잘해서 서울대 가겠네요? 핑크노이즈 들으면 몽롱해져서 정신이 나가고?”         


그가 진지하게 덧붙였다.          


“음향을 공부한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특정한 파장이나 소리가 사람의 신체나 정서에 극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해요. 누군가를 조종한다거나 특정한 메시지를 주입한다는 건 더욱 불가능하고. 다른 전문가들은 어떻게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소리로 누군가를 조종하려면 뇌가 외부에서 오는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거든요. 라디오 수신기처럼. 그게 가능하려면 뇌를 인위적으로 개조하는 게 먼저인 거죠.”


이쯤에서 개인적 취향을 말하자면, 나는 극도로 사악한 콘셉트의 밴드들은 잘 듣지 않는다. 폭력적이고 악마적인 음악들 중에서도 ‘아, 저건 못 듣겠다’ 싶을 만큼 극단적인 음악들이 있다. “저는 악마 숭상자가 아닙니다. 결백해요!”라고 말하기 위해 미리 약을 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런 스타일의 음악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그렇다고 아주 안 듣는다고는 못하겠다). 정서로 표현하자면 만화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클라우저 11세처럼 “내 주식은 인육 오므라이스, 케첩은 인간의 피로 만들었지” “오늘 밤 너의 가죽을 우리 집 카펫으로 쓸 거야” “그로테스크 내장폭발!” 같은 식의 곡들이다.


카니발 콥스 같은 밴드가 대표적인데, 이런 음악들은 앨범 재킷만 봐도 무시무시하다(오죽하면 데스메탈 앞에 부르털이라는 수식어를 또 붙일까). 같은 메탈이라도 이런 스타일의 음악들을 들으면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인간이 된 것 같은 죄책감이 밀려온다. “쟤 좀 가서 혼내줘!”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냥 사람을 죽여서 데려온 기분이랄까. 내가 평소에 즐기는 건 “아, 몰라 신나게 놀자!” “이 쓰레기들아 다 죽어라!” “너처럼 헤드뱅잉 못하는 꼰대는 필요 없지, 하하!” 정도의 음악들이다. 스스로 억눌려 있던 것들을 날려버리는 곡들을 들으면서 내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실 메탈을 즐기는 거의 모든 이들이 그 후련함 때문에 메탈을 듣는다. 사악한 사운드를 즐기는 이들도 마찬가지. 다만 나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자꾸 꿈에 나온다.          


그나마 제일 덜 무서운 앨범. 다른 건 진심 무시무시하다.


다만 내 취향과는 별개로 악마주의적 음악들을 굳이 도덕적 틀에 넣고 싶지는 않다. 그건 좀비나 슬래셔 무비를 취향이 아닌 도덕적 차원의 문제로 걸고넘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실 그들이 악마적 상징들을 음악에 끌어다 쓴다는 이야기는, 뒤집어 말해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에 관한 가치판단이 정립돼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니까 일종의 위악인 셈이다. 왜 그들이 온갖 사악한 이미지들을 끌어다가 위악을 부리는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위선과 위악 굳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위악에 손을 들어주는 편이다. 타인 앞에서 보여주기식 선행을 베풀면서 자신이 정말 선한 사람이라고 믿어버리는 경우를 현실에서 많이 봐와서다. 그런 이들의 공통점은 호의를 받아들이는 이들의 마음 따위는 애초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인데, 애초에 선을 행하는 자신에 취해 거기까지 시선이 미치지 못하니 당연한 인과이리라. 그럴 바에는 꾸며진 악 저편에 숨어있는 인간적인 조각들을 찾아내는 편이 차라리 내게는 더 낫다. 위악을 부리는 이들 마음 속에 반드시 선이 들어있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말이다.


한 사람의 내면에는 형언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공존한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감정과 지구멸망을 바라는 감정이 한 인격체 안에서 생동할 수도 있다. 그 감정들을 여러 형태로 표현하는 일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다면 데스메탈이 예술이 아닐 이유는 없다. 실제로 데스메탈 아티스트들 대부분은 멀쩡히 건강한 삶을 누리며 살아간다. 예술과 현실의 삶은 다르니까. 무대에서 다 모든 걸 다 때려 부수고 난 뒤 집에서 고양이와 화초를 키우며 신앙생활을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데스메탈과는 별개로 순수 크리스천들이 조직한 가스펠 메탈이라는 장르도 있다).          


내가 아는 한, 정말 사악한 이들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다 쓰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의 영광을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그때를 이야기하며 자신들이 저지른 추악한 과거들은 실체 없는 주장으로 일축한다. 피해자들의 절규를 근거 없는 사실로, 강요된 희생과 억압을 자랑스러운 일로 포장한다. 합리적 논증보다는 이분법적 사고와 비과학적 금기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디서 많이 본 것들 아닌가?       


그렇다면 이쯤에서 다시 물어보는 게 좋겠다. 메탈과 파시즘(또는 근본주의 종교관), 과연 뭐가 더 위험할까? 솔직히 말하면 메탈이 더 위험해졌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더 위험해지고 난폭해진 데스메탈이 전 지구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쇼미더메탈, 미스터메탈, 복면메탈 같은 프로가 매주 나오는 세계에서. 그렇다면 일렉기타 소리가 몸에 안 좋다며 설득당할 일도, 발매된 지 몇 개월 된 앨범이 음원 사이트에 언제 올라오나 하염없이 기다릴 필요도 없을 텐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세계는 드레이크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