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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Jun 20. 2024

할 수 있는 일과 소망을 구분하나요?

"이런 결과는 근래 들어 처음이네요."                   


상담 첫날,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전 제출한 CTI조사 결과를 해석하는 것이었다. 상담센터에 상담의뢰를 하면 방문 일주일 전에 메신저로 CTI검사 문항을 보내준다. 상담자는 상담 전날까지 반드시 이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조사결과가 있어야 체계적인 상담이 가능해서다.                    


상담사가 가장 먼저 지적한 건 위험회피 수치였다. 무려 100이 나왔다. 최고치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100이나 0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위험회피 지수가 높을수록 일상에서 불안감을 심하게 느낀다는 의미다. 이러면 일상이 무기력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걱정이 많아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가 크다. 반대로 위험회피 지수가 낮으면 위험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둔감하고 충동적이라 각종 위험요소에 자신을 노출시킬 가능성이 높다. 나는 단순히 위험회피 지수만 문제가 아니었다. 성취욕, 유능감, 관대함, 자기 수용 모두 바닥을 기고 있었다.

           

상담사는 전체적으로 에너지 레벨이 낮은 상태라 했다. 본래 불안함을 느끼는 기질인데 에너지 레벨이 낮으니 외부에서 오는 위험요소들을 더 크게 느끼고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랬다. 항상 나는 최악의 결과를 생각한다. 사소한 일로 하드보일드 영화 하나를 찍을 정도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우리 동네까지 물이 찬다던데, 어디서 살아야 할지 비상계획을 짜 본 적도 있다. 의도했다기보다 의식이 그렇게 흘러갔다.


이런 위험회피 성향은 미래를 대비하도록 돕지만 필요 이상으로 자아를 소진시킨다. 안다, 아는데 마음대로 안 되는 걸. 그래서 심리상담을 온 거예요, 선생님! 상담사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우선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불안 요소들을 적는다. 그리고 그 일들이 자신이 어쩔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표시한다. 


불경기라 매출이 반 토박이 났다? 어쩔 수 없다. 이웃 중에 누군가가 실내에서 담배를 핀다? 이것도 어쩔 수 없다. 지금 당장 일을 관둔다? 어, 이건 되네? 나와서 다른 일을 찾는다? 이... 이건 되는 건가? 집에서 살림을 한다? 자.. 자기야, 이건 되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들을 정리해 보니 속이 후련했다. 어떤 일을 맞이한 후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진짜 해결책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대비하며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대처는 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나머지는 뭘 해도 어쩔 수 없다. 운명이다.

  

그럼에도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바란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좌절감을 털어내지 못해서다. 현실과 소망을 구분하지 못한 결과다. 눈이 오는 날이면 흙먼지로 난장판이 될 바닥에 절망하고, 폭염주의보가 뜨면 밀려드는 주문이 감당이 안 될까 봐 걱정했다(참고로 장사는 날씨에 민감하다). 두려운 일들이 생각나면 당장이라도 닥칠 것마냥 괴로워했고, 실제로 일이 찾아오면 '이 더러운 세상!' 하면서 분노했다.

 

당시에는 적절한 스트레스 표출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상담 결과는 정 반대였다.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면 지금처럼 스스로를 괴롭게 몰아가진 않았을 텐데. 동시에 내가 느끼는 불안감 역시 줄어들었을 것이다. 아그리피누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서기 67년 아그리피누스는 네로 황제에게 반역죄 혐의로 원로원 재판에 회부됐다. 이미 그의 동지인 세네카와 루카누스는 처형됐다. 그 역시 사형 판결이 유력한 상황.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법했지만 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판결 당일에도 평소처럼 목욕을 하고 운동을 했다. 그리고 내려진 판결. 추방이었다. 아그리피누스는 '다행이군' 하면서 평소처럼 저녁을 먹으러 갔다.


당시의 그가 침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가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마음을 졸이는 대신 자기가 어쩔 수 없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할 일을 했다. 판결 당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평소처럼 목욕과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부질없는 짓일까? 추방이나 가택연금이었다면 평소처럼 청결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사형이었다면 단정한 용모로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담대함을 현대에서 실천하려면 사실 아그리피누스보다 한 걸음 더 내려놔야 한다. 이 세상에서 내 의지대로 되는 게 거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체념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세상의 불확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다음은? 


영화 <록키 발보아>에서 주인공 록키는 시합을 관두라는 아들의 요구를 거절하며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햇살과 무지개로 가득하지 않아. 매우 못 돼먹고, 추악한 곳이지(…)네가 얼마나 인생에서 당하고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가가 중요한 거다. 네가 얼마나 쥐어 터지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말이다."    

          

도시는 각자의 의지가 부대끼는 곳이다. 좁은 곳에 많은 인원과 자원을 집중시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있으면 자신의 의지를 투사시킬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반칙을 하는 사람도 생긴다. 세상이 때로 못 돼먹고 추악한 이유다.


게다가 이곳이 어딘가. 살인적인 인구밀도의 대한민국 아닌가. 남북 120km, 동서 90km 남짓한 수도권에만 무려 2600만 명이 산다. 버스를 타도, 맛집을 가도 줄 서기는 필수다.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쿵쿵 뛰어대는 이웃이 등장하면 내 주거권은 한순간에 박살이 난다. 운전자들은 차 댈 곳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출근길 지하철은 매번 압사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그렇게 해내는 밥벌이는 늘 더럽고 치사하다. 맘대로 되는 게 없다.


그때 록키가 말한다. 사회가 뻗는 주먹을 온전히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그냥 맞으면서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조금 부끄럽지만, 록키의 저 말을 듣고 질질 짰다. 하필 감자칩을 입에 넣고 씹고 있던 중이었다. 나 자신이지만 추잡한 몰골. 아내가 못 봐서 다행이다. 팔뚝으로 눈물을 슥 닦는데 문득 도장에서 스파링 하던 게 떠올랐다. 처음 한 스파링이었다. 바짝 웅크린 채 신나게 맞고 있는데 관장님이 소리쳤다. "야야, 그렇게 웅크리고 있으면 더 많이 맞잖아! 파고들어!"


그렇다. 맞으면서도 일단 가야 한다. 회피의 대가는 더 혹독하니까. 그러려면 일단 한 걸음 내딛는 데 집중해야 한다. 무섭다고? 쉬운 일일수도 있다. 이 추악한 세상에서 이미 우리는 꽤 많이 맞고 있지 않은가. 두들겨 맞고 있는데 맞는 걸 걱정하는 바보짓은 이제 그만하자. 일단 가드를 올리고 한 걸음 파고 드는 데 집중하자. 그럼 뭐든 되겠지.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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