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우승? 이대로면 8강도 힘들다

by 일로


하마터면 질 뻔했다. 예상대로 쉽지 않은 팀이라 생각했으나 그 이상이었다. 무엇이 경기를 이렇게까지 끌고 갔을까. 요만 말하면 두 팀의 전술적 대비 때문이다. 전반 초반에는 두 팀 다 쉽지 않은 경기를 했다. 이후 요르단이 변화를 줬다. 그게 적중했다. 선수 교체가 아니라 아예 경기 운영 방식을 바꿨다. 요르단에게는 전술적 플랜 B가 명확했다.


반면 한국은 바레인전과 비슷한 패턴의 교체를 감행해 반전을 꾀했다. 경기 콘셉트의 변화보다는 스타일이 다른 선수를 바꾼 수준이었다. 그 차이였다. 무승부였으나 우리가 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건 그래서다.

박용우와 이기제의 포지셔닝은 개선됐다. 하지만...


한국은 경기 초반 442를 들고 나왔다. 첫 경기와는 다르게 박용우가 높은 위치까지 나가지 않았다. 그로 인해 후방의 커버 플레이도 잘 작동했다. 요르단이 공을 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오히려 손흥민의 침투로 허를 찔렸다. 전반 20분경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우리 측 두 줄 수비 사이에 요르단 공격수들이 서넛이 끼어 들어왔다.

전반 초반 한국의 두 줄 수비. 두 톱 자원과 2선 간의 거리가 상당하다. 이 틈으로 두 명의 미드필더가 자유롭게 움직였다.


전반 중반 요르단의 공격. 두 줄 수비 안쪽으로 세 명의 미드필더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사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1선과 2선의 간격이 너무 넓었기 때문이다. 두 줄 수비 시 가장 앞에 있는 손흥민과 조규성이 너무 전진했다. 그 사이에 요르단 미드필더들이 둘씩 들어와 빌드업을 시도했다. 교두보가 마련되자 우리 측 두 줄 수비 사이에 미드필더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결국 팀 압박의 부실함이 또 문제를 야기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아모타 감독이 오른쪽에 변화를 줬다. 알 타마리(10번)와 하다드(23번)가 앞 뒤 위치를 바꿔가며 우리를 괴롭혔다. 어떻게? 알 타마리가 오른쪽 높은 위치로 전진하면 이기제가 수비를 위해 뛰어 나간다. 그때 하다드가 왼쪽 수비수 김민재 옆 또는 앞에 선다.


전반 중반 요르단의 공격. 알 타마리가 바깥쪽으로 벌려서 이기제를 끌어내고, 그 자리에 하다드가 공을 몰고 가는 중. 이 상황에서 김민재는 함부로 달려 나갈 수 없다.


하다드는 드리블 상황에서 자신 있게 김민재와 맞섰다. 자기가 잘난 걸 알아서? 아니다. 하다드는 김민재가 자신을 향해 달려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김민재가 달려 나가는 순간 가운데에 있는 알나마이트가 그 자리로 침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달려가는 순간 스루패스가 들어갈 것이고, 그러면 바로 1대 1 찬스다. 당연히 김민재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다.


이렇게 두 선수가 위치를 바꿔가며 괴롭히자 이기제와 이재성은 혼란에 빠졌다. 위치를 지켜야 할지, 대인마크를 계속해야 할지 당황한 모습이었다. 대인마크를 하자니 상대의 의도대로 끌려다녀야 하고, 위치를 지키자니 스위칭 플레이와 알나마이트의 중앙 침투가 맞물려 위협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결국 이게 진영 전체에 영향을 줬다. 오른쪽을 보호하기 위해 선수들이 일제히 한 쪽으로 쏠렸다. 결국 이 변화에 대처하지 못해 두 골을 허용했다.


요르단이 이강인을 막는 방법


이렇게 말하면 우리가 요르단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점유율과 슈팅 숫자 모두 한국이 우세했다. 근데 왜 우리는 그 경기에서 열불이 났을까? 이강인의 플레이가 좋지 않았고, 그 결과 공격 전개 자체가 경색됐기 때문이다. 그저 이강인이 못해서? 아니다. 요르단은 이강인을 마크하기 위한 전략을 2중 3중으로 준비해 왔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이강인이 돌아서지 못하게 밀착 마크한다.

2. 이강인에게 공이 가는 길을 차단한다.

3. 이강인이 공을 잡는 순간 뒤에서 몰고, 앞에서 뺏는다.


전반 초반 이강인이 볼을 받는 장면. 윙백인 알 마르디가 바짝 붙어서 이강인이 돌아서지 못하게 방해한다. 올완은 설영우를 견제만 할 뿐 건드리지 않는다. 패스길을 막는 게 목적.


정승현이 공을 잡을 때의 모습이다. 이때 이강인 뒤에 알 마르디(13번)가 바짝 붙는다. 반댓발 잡이 윙어는 특성상 공을 받으면 무조건 반대편으로 돌아서야 한다. 알 마르디는 이강인이 왼쪽으로 돌아서지 못하게 방해했다. 이강인이 이를 감지하고 우리 측으로 공을 몰고 가면 앞에 있던 올완(9번)과 협력해 공을 빼앗았다.


올완의 역할도 중요한데, 박용우나 정승현이 공을 잡으면 이강인으로 향하는 패스 길을 가로막는다. 작은 블록을 만들어서 이 구역 자체에 공이 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강인의 볼 터치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 이유다. 사진에서 보듯 올완은 설영우와 자주 조우하지만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이강인이 공을 잡고 후방으로 내려오면 마르디와 함께 앞뒤로 둘러싸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요르단과는 달리 우리는 이강인이 막혔을 때를 대비한 플랜 B가 없었다. 이강인이 가운데로 이동해도 알 마르디가 따라와 괴롭혔다(그들이 5백을 들고 나온 이유기도 하다). 화장실까지 따라갈 기세였다.


너무 평면적인 클린스만의 전술적 안목


이때 우리의 대책은 스위칭이 전부였다. 경색된 공격을 풀어주기 위해 조규성이 오른쪽으로, 손흥민이 왼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방의 공격수 네 명이 위치를 바꾸며 요르단을 공략했지만 그저 위치만 바꾼 수준이었다. 몸싸움이 되는 조규성 옆에 이강인을 두고 포스트플레이를 노리거나, 이강인을 후방으로 내려서 올완을 끌어낸 뒤 롱패스로 손흥민의 측면 침투를 노리는 등의 여러 선택지가 있었으나, 변화는 없었다.


저...저기요? 웃지만 말고 말 좀 해봐요 ㅠㅠㅠ ⓒKFA


후반 들어 교체된 김태환이 본격적으로 오버래핑을 시도하고, 손흥민이 왼쪽 높은 지역까지 돌파한 뒤에야 경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전술변화가 아닌 선수 개인 기량의 변화로 줬다(왜 위기를 맞아야만 풀백들이 높은 위치에서 공격을 도와주는 걸까).


팬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도 이 지점이다. 이강인이 봉쇄됐을 때 선수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양하게 위치를 바꿔가며 공격을 시도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그때도 코칭스태프는 벤치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오직 선수들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서만 공격이 이뤄졌다. 규율도 매뉴얼도 없는데 플레이메이커까지 봉쇄되니 방법이 없었다. 반면 요르단은 두 가지 이상의 가능성을 상정해 전술적 대비를 하고 나왔다.


벌써부터 집중견제 이강인, 대비책이 있나


이대로라면 우승은커녕 8강도 힘들다. 지난 대회 이후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아시아 축구는 급격히 성장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카타르를 위시한 중동 국가들이 대규모의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 그 결과 좋은 감독들이 첨단의 전술들을 각 국가에 이식하고 있다.


이제 상당수의 중동 국가들은 더 이상 텐 백 축구를 구사하지 않는다. 카타르는 스페인식 축구를 구사하고 있고, UAE는 벤투 감독의 지휘 아래 빌드업 축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요르단은 변칙 3백과 하프스페이스에서의 로테이션, 부분 지역방어를 앞세워 한국을 괴롭혔다. 그에 반해 우리가 가진 전술적 철학과 대책은 현재 전무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뭘 할 것인가? 한국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강인을 봉쇄하는 강도는 경기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지난 평가전에서의 전술적 흐름을 전부 톺아보건대 여기에 대비할 우리의 전술적 대책은 사실상 없다.


결국 이번 대회도 분노는 팬들의 몫이 됐다. 우리에게 아시안컵은 왜 늘 이럴까? 지난 60년 간 팬들에게 아시안컵이란 ‘뒷목 잡기’의 역사, 그 자체였다. 팬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은 아시안컵이란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다가올 경기들이 벌써부터 두렵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빠른 요르단, 이것 바뀌지 않으면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