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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Jun 06. 2024

책에 집중이 안 된다고요?

어떻게 하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글 하나 제대로 팔아본 적 없는 몸이지만, 이런 물음에 갈증이 있었더랬다. 쉬는 날 출간 작가들의 강연도 틈틈이 찾아갔다. 언젠가 작가 한 분이 지자체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 게 기억난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고급 독자가 돼야 한다. 그렇지. 고급 독자가 돼야 하는데, 이게 말이 쉽지.   

   

고전을 읽을 때면 문장의 느린 속도에 압도된다. 19세기 작가들의 글이 특히 그렇다. 나는 2024년에 사는데 소설 속 문장의 속도는 마차를 끌던 19세기다. 열 페이지쯤 읽으면 답답해  한숨이 나온다. 최근에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읽을 때 그랬다. 총 두 권의 책으로 나눠져 있는데, 페이지를 넘긴 횟수보다 눈을 감고 졸아댄 횟수가 더 많았다. 결국 나머지 한 권을 다 읽지 못하고 항복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권하지 않는다.      


핑계를 대고 싶다. 짧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게 세상에 너무 많다. 그에 비해 책은 내가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축구는 90분에 끝난다. 영화도 두 시간 반이면 웬만한 건 다 본다.      


책은? 300페이지 기준으로 일주일은 잡아야 한다. 500페이지 이상의 책?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예전에 언론고시 스터디 할 때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어 본 경험이 있다. 정확히는 읽어보려 노력했다. 몸도 뇌도 싱싱할 때였다. 근데 무리더라. 하필 발제된 책이 고전이면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일주일 안에 읽으라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지.      


그렇다고 독서가 마냥 괴로운 건 아니다. 서점에서 산 따끈따끈한 책을 카페에서 펴 읽었을 때의 즐거움은 분명 삶의 활력소다. 다만 버거울 뿐이다.      


핸드폰에서 멀어지니 독서가 더 잘 됐어요! 같은, 기승전 ‘디지털 디톡스’의 논리는 잠시 치워 놓겠다. 경험상 지루하면 핸드폰도 좀 만지고, 카페에서 지나가는 사람도 좀 구경하는 게 한 페이지라도 더 읽는 데 도움이 되더라. 시간 기근이라는 시대적 압박에 어깃장을 놓고, 번아웃을 막기 위해서라도 독서는 중요하다. 이 양가적인 콘텐츠를 어찌해야 좋을까. 시행착오 끝에 개인적으로 터득한 완독 방법은 다음과 같다.      

 

분량이 적어도 명작은 많다     


유능한 장수는 유리한 전장에서 싸운다. 무모한 싸움을 걸지 않는다. 정신이 소모되면 빨리 지친다. 이런 유형의 자기 계발이 지속되면 번아웃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그제는 패트릭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와 해리 프랭트퍼트의 <개소리에 관하여>를 읽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단숨에 완독했다. 다음 목표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다.      


모두 100페이지 미만으로 집중력을 유지하면서도 가볍게 읽어 내리기 딱 좋다. 무엇보다 문학적 깊이를 견지하면서도 성취감까지 느낄 수 있다. 경험상 긴 책이든 짧은 책이든 완독 했을 때의 성취감은 크게 다르지 않더라. 여기에 휴대성까지 겸비해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독서의 생활화는 평소에 책을 휴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잘 모르면 검색하자      


물론 책이 얇다고 해서 무조건 쉽게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번역서의 경우 가독성이 떨어지는 구간이 왕왕 있다. 이 경우 속도감 있게 읽어 넘긴 뒤 검색을 통해 내용파악을 하는 것도 좋다. 그 반대도 좋다. 자연스럽게 책의 내용을 복기하는 효과가 생긴다. 이해력을 높이겠다며 억지로 책과 싸우지 말자. 세상에 똑똑한 독자들은 많고,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회로도 괜찮다는 얘기다. 그 노력만으로도 이 책은 이미 당신의 머릿속에 깊이 들어와 있을 것이다.           


복습의 최고봉은 필사     


이렇게 읽은 책의 내용 중 기억하고 싶은 부분은 표시해 둔 뒤 필사를 해보자. 직접 손으로 쓰는 것도 좋지만 타자도 괜찮다. 나는 언제든 끌어다 쓸 수 있는 정보값을 축적한다는 차원에서 타자를 선호한다. 별 거 아닐 것 같지만 글 쓸 때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필사는 발췌독을 할 때도 꽤나 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완독 하지 않고 발췌만 하는 독서는 공허하다.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지속되면 동기부여가 힘들어진다. 나 역시 급하게 글을 써야만 하는 경우에만 발췌독을 하는 편이다. 되도록 완독을 전제로 하는 발췌를 권한다.   


여러 권을 돌려 읽는 것도 방법이다     


위의 방법을 써도 독서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날의 집중력이나 기분이 책 읽기를 버겁게 할 때가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여러 개의 책을 돌려 읽는 편이다. 일단 한 챕터를 읽어본다. 버거우면 거기서 멈추고 다른 책을 편다. 이러면 정신적으로 환기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 책만 들여다보며 매달릴 때와 다른 책들을 번갈아 읽었을 때 체감하는 가독성은 적잖은 차이가 난다. 실제로 두 권의 책을 번갈아 읽었을 때 더 많은 페이지를 소화할 수 있었다. 설사 원하는 만큼 읽어내지 못하더라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그날 두 권의 책을 읽었으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단 10분이라도 당신이 그 책에 몰입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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