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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May 30. 2024

스스로를 위해 요리를 해본 적 있나요?

드라마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혹시 보셨는지. 영화 <카모메 식당>의 주연인 고바야시 사토미(아키코 분)가 여기에서도 식당 주인으로 나온다. 주인공인 아키코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식당을 운영하기로 결심하고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다. 아아, 월급 노동자의 자영업 시장 진입이라니. 근데 식당 일도 한 번 안 해보고 가게를 차린다고? 게다가 메뉴는 샌드위치와 수프 두 가지. 여기서부터 훈수를 두고 싶은 마음이 '드릉드릉'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업을 시작하자 맞은편 카페 사장이 종종 찾아와 훈수를 둔다. 에피소드마다 훈수의 소재가 다른데, 3화에서는 영업 방침에 대해 말한다. '영업시간이 이렇게 짧으면 안 된다' '메뉴 가짓수도 지금보다 많아야 한다' '두 가지 메뉴만 파는 건 너무 무모하다' '이렇게 한가하면 큰일 난다' 등등. 그때 아키코가 이야기한다.                 


"가게가 꼭 바빠야 하나요?"              


허를 찌르는 대사. 누군가는 '아니, 가게가 바빠야지 뭔 소리야!' 하겠지만,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아키코의 말을 곱씹어보니 어딘가 모르게 속이 시원했다. 그래, 가게가 꼭 바빠야 하나. 식당 역시 하나의 공장이라 생산량을 넘어서는 주문이 들어오면 오만 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손님은 서비스를 온전히 제공받기 힘들고, 음식 맛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사장의 몸이 고되고 힘들면 손님들도 그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내가 즐거워야 남도 즐겁다. 장사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가게가 꼭 바빠야 하나요?”라는 반문은 요식업계에서는 일종의 금기다. 세상 사람들에게 가게는 일단 바빠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나 보다. 특히 동종업계 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아마 미쳤다고 생각할 거다. 보나 마나 이런 얘기가 날아오겠지. ‘매달 낼 월세랑 인건비는?’ ‘재료비랑 수도세 가스비는?’ ‘너 돈 벌려고 이거 하는 거 아니었어?’         

 

그도 그럴 게 대다수의 자영업자들은 바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일한다. 임차인이기 때문이다. 이게 모든 고난의 근원이다. 월세랑 보증금만 없어도 훨씬 여유롭게 일할 수 있다. 브레이크타임도 걸고, 일주일에 이틀 쉬고, 팔기 싫은 메뉴를 억지로 만들 필요도 없다. 아키코의 대사가 통쾌하면서도 부러운 건 그래서다. 아키코는 어머니에게 가게가 아닌 토지를 물려받은 것이기에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다. 보통의 자영업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요즘은 특히나 그렇다. 상가와 지식산업센터가 공급과잉이라던데 상권의 월세가 요지부동인 이유는 뭘까. 어쨌거나 우리 가족도 바쁘게 움직여야 입에 풀칠을 한다. 임차인이니까.  


사실 나도 한가한 게 좋다. 사장에게도 일은 일이다. 고되고 힘들다. 장사고 뭐고 그딴 게 다 뭔가. 손님들이랑 농담 따먹기도 하고, 시험 본 학생들한테 초콜릿도 나눠주고, 맛있는 스태프 밀 만들어다 직원들이랑 나눠먹고 싶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가게를 보면 가끔 어지럽다. 한 가지를 정성 들여 진득하니 만들고 싶은데 1초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상황이 찾아오면 울고 싶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먹는장사는 이게 마지막이길 바라는 이유다. 내 땅을 사면 모를까.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완성하고, 다시 다른 한 가지에 집중하는 일을 하고 싶다.     


요즘에는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려 한다. 아내가 출장 중이라 사실 가사에 조금 게을러도 상관없지만, 그래서 더 만들고 싶은 것들이 있다. 밖에서 음식장사하고 집에 와서 또 요리하면 힘들지 않으냐고? 온전히 나를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해 만드는 한 그릇. 기회는 이때가 유일하다. 피곤해도 어쩔 수 없다. 감수하고 하는 일이다. 물론 매일은 못한다.


오늘 만들 메뉴는 마라 치킨 덮밥이다. 퇴근 두 시간 전부터 오로지 이걸 먹겠다고 생각하며 버텼다. 맛을 떠나서 퇴근 시간을 버티게 도와줬다는 것만으로도 이 메뉴는 성공이다. 먼저 냉동 닭 가슴살을 미지근한 물에 넣고 해동한다. 여기에 맛술과 우유를 섞어주면 닭 비린내를 확실히 잡을 수 있다. 다 녹은 닭 가슴살은 물기를 짜 주고 후추와 소금 반 티스푼에 버무려 준 뒤 10분 간 재운다. 여기에 식용유 두 큰 술, 밀가루 한 큰 술을 넣고 버무려준다. 이래야 기름에 볶을 때 닭 가슴살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걸 막을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더 간단하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뒤 잘게 썬 대파와 다진 마늘을 넣고 약불에 볶는다. 마늘이 노랗게 익어갈 즈음 닭 가슴살을 넣고 같이 볶아준다. 불을 너무 세게 하면 수분이 다 날아가 퍽퍽해지니 조심하자. 닭 가슴살의 표면이 다 익었다면, 마라 소스와 굴 소스를 한 티스푼씩 넣고 굴려준다. 이걸 밥 위에 올려주면 끝! 여기에 물에 데친 그린빈을 고명으로 올린다. 가게서 가져온 일식 된장국을 곁들이면 한 상 제대로 완성!      


요리는 오감을 쓰는 작업이다. 재료가 익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소리와 냄새, 조리용 젓가락 끝에서 감지되는 저항감 역시 요리의 일부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질 때 요리가 즐겁다. 흥에 겨워 노래를 흥얼거릴 수도 있고, 엉덩이를 꿍실대며 춤을 출 수도 있다. 이 모든 오감을 배경 삼아 머릿속에서 음식 드라마 한 편을 쓰고 있을 수도 있다. 일로서 하는 요리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자신을 위한 요리는 스스로에게 하는 포옹이다. 자신을 껴안아 줄 수 없기에 우리는 요리를 만들어 스스로를 먹인다.



아, 말이 길었다. 그래서 맛은 어떠냐고? 촉촉한 닭 가슴살에 마라 향이 곁들여져 질리지 않는다. 먹을수록 얼얼한 느낌이 입 안에 쌓인다. 짭짤해서 맥주랑 먹어도 좋다. 여기에 된장국을 후룩 마시면 입 안이 다시 평화를 찾는다. 덩달아 나도 평화를 찾는다. 시간에 쫓기면서 먹을 필요가 없는 식사란, 말 그대로 행복이다. 식당에서의 일은 잠시 잊는다.      


먹어야만 풀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있음을 자각할 때, 주변으로 뻗친 시선은 오로지 자신에게 향한다. 그때 다가오는 행복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향한 미움은 그제야 비로소 누그러진다. 그건 아마 시인 최금진의 시 제목처럼 밥을 먹으면 조금은 멀쩡*해지기 때문이겠지.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 그 속에서 즐기는 식사.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포만감. 인간이 누려야 할 수많은 존엄들 중, 어떤 것들은 본능적으로 떠오른다. 인생 뭐 있을까. 힘들고 고단할 땐 일단 맛있게 먹고 볼 일이다. 그래야 스스로가 조금은 멀쩡해질 테니까. 별 거 없는 인생이 조금이나마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최금진,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창비, 2014) <밥을 먹으면 조금 멀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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